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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일 박사의 미스터리 속의 과학] '눈가리고 보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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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일 박사의 미스터리 속의 과학] '눈가리고 보기'의 비밀

입력
2005.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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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은 바깥 세계의 정보를 담은 빛이 눈으로 들어와 망막에서 신경 신호로 바뀐 후 이 신호가 뇌로 전달돼 지각이 이뤄지는 과정이다. 눈을 가려 빛을 차단하면 당연히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그런데 어린 학생이 눈을 가리고 책을 읽어 보이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방영된 적이 있다. 이런 일은 과거부터 러시아에서 많이 일어났다. 1960년대 로자 쿨레쇼바라는 20대 여성은 눈을 가린 채 손가락 끝으로 색깔과 글자를 알아냈다. 당시 그의 ‘피부 시각’은 유명 과학자에 의해 사실로 확인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피부 시각’ 또는 ‘눈을 가린 시각’에 대해 회의론자는 단순한 마술적 속임수일 가능성을 지적해 왔다. 지금도 많은 마술사들이 관객을 불러내 안대를 단단히 눈에 씌운 다음 사물을 알아맞히는 묘기로 인기를 끈다. 유명 과학자라 해도 이 같은 마술적 속임수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의 마술사 장 로베르_우댕은 안대로 눈을 철저히 가린 상황에서 ‘제2의 시각’을 연출해 마술계의 전설로 남았다. 하지만 그는 회고록에서 “항상 튀어나온 코가 (안대 밑으로) 외부 상황을 보기에 충분한 공간을 남긴다”고 털어 놓았다. 어떤 방식으로 눈을 가리든지 코의 틈으로 훔쳐볼 방법이 있다는 이 말은 ‘눈을 가린 시각’ 검증에 참조할 부분이다.

2002년 훈련을 통해 ‘눈을 가린 시각’을 갖게 됐다는 미국의 러시아계 10세 소녀 나탈리아 룰로바가 마술사 제임스 랜디가 진행하는 유명 텔레비전 프로그램 ‘100만 달러 초능력 시험’에 도전했다. 룰로바는 평소 주위에서 인정을 받은 대로 검은 스펀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색깔과 글자를 잘 알아맞혔다. 랜디는 안쪽은 연한 스펀지, 밖은 알루미늄 포일을 댄 물안경(고글)을 씌우고 물안경과 코가 접촉하는 주위에 반창고를 붙여 틈까지 없앴다. 그러자 룰로바는 초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0대와 20대 두 러시아 남녀가 프랑스에서 ‘눈을 가린 시각’에 대해 시험을 받은 이야기도 비슷하다. 1996년 이들을 시험한 파리의 보건기관은 ‘눈을 가린 시각’을 확인했으며 자기공명영상(MRI) 등으로 뇌의 시각 영역에서 변화가 감지됐다고 보고했다. 이듬해 이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시험에서 그르노블 국방의학연구센터의 심리학자 등은 두 남녀의 눈에 솜을 대고 알루미늄 포일로 덮은 다음 반창고로 틈을 막아 고정시켰다. 그리고 비행기 탁자 등 누구나 아는 이미지를 제시하고 알아맞히도록 했으나 역시 초능력은 나타나지 않았다.

2002년 1월 러시아의 ‘인간 생리학’ 잡지에 정신생리학자 나탈리야 베크테레바의 ‘직접 시각’ 논문이 발표됐다. 유령이 환상이 아니라 실재라고 주장하는 등 초자연 현상에 믿음이 깊었던 그는 ‘브로니코프 방법’으로 훈련시킨 7명의 10대 학생을 시험해 눈을 통하지 않고 직접 물체를 보는 능력을 확인했으며 이들이 정상시각과는 다른 뇌전도 패턴을 보인다고 보고했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심령술사 비아체슬라프 브로니코프가 개발한 ‘브로니코프 방법’은 눈을 감고 마음 속에 스크린과 이미지를 떠올린 뒤 검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사물을 볼 수 있도록 훈련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베크테레바와 그의 ‘인간 뇌 연구소’가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변 학자들에 의해 ‘시각 장애인이 없는 세상 프로그램’으로 지금도 홍보 되고 있다.

러시아 과학 학술원에는 과학적 사실이 아닌 것을 과학인 것처럼 포장한 ‘의사(擬似) 과학’ 문제를 다루기 위한 위원회가 조직돼 있다. 베크테레바는 최근 ‘모든 과학의 검열관인가?’라는 글로 이 위원회를 반박했다. 그러자 초전도체 이론 연구로 20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비탈리 긴즈부르크는 “과감한 생각들이 아직 진리는 아니다”라는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자들이 ‘직접 시각’을 국가적 특별봉사의 차원에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푸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것과 같은 행위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긴즈부르크는 “어떠한 획기적 발견도 공표 이전에 충분한 검증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국립 모스크바대 교수들이 ‘직접 시각’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다른 방식으로 가린 결과 시각 능력이 사라졌음을 지적했다. 그는 “뇌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사기꾼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며 과학 아카데미에 이 문제를 조사할 전문가 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했다. 결국 ‘눈을 가린 시각’ 문제는 과학의 근본인, ‘객관적 검증’의 문제로 귀착되는 셈이다.

과학평론가ㆍ전 숙명여대 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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