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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전문가를 철밥통으로 만드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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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전문가를 철밥통으로 만드는 사회

입력
2005.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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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야간 자율 학습을 하는데 참고서를 학생이 챙겨오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교사가 집에 가서 가져오라고 하길래 학생은 집에 가서 가져오면 왕복 1시간이라서 차라리 일찍 집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단다.

교사는 안된다며 가져오든지 그냥 있든지 하라고 했단다. 한광물 수입업체의 회사원은 최근 뽑기를 하기 위해 하루 말미를 내서 대전 출장을 다녀왔다.

그의 회사는 조달청 경쟁 입찰에 응했는데 가격조건이 같은 다른 회사가 있어서 2개 회사가 추첨으로 최종 낙찰자를 정하기 위해서였다. 똑같은 조건을 내놓은 회사끼리 다시가격입찰을 받는게더합리적이지 않느냐고 담당 공무원에게 물었다가 규정이 그렇다는 대답만 들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동일 가격이면 2차낙찰자는 추첨으로 정하게 되어 있다.

-재량권 없이 사회적 낭비

‘굿 윌 헌팅’이라는 미국 영화를 보면 매사 추세츠공과대학(MIT)의 청소원인 주인공 청년은 복도에 걸린 칠판에 수학 난제를 풀었다가 그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교수가 그 학생은 그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고 평가하자 다른 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면 우리나라 명문대에 그런 재능을 가진 청소원이 있다면 그는 곧바로 그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 물론 없다.

교수들에게 그런 재량권이 없기 때문이다.한국 사회에서는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한테서 융통성을 찾기 힘들다.

가장 심한 것은 공무원들이지만 도처에서 상식보다는 원칙만을 내세우는 갑갑한 전문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모든 분야에서 오래 종사하면 다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 전문가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은 문제해결방안을 내놓기보다는 자리만 지키고 앉아 원칙만 고수하는 것을 더 많이 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전문가가 아니라 자리만 지키며 밥을 벌어먹는‘철밥통’으로 불린다.

전문가가 철밥통이 되는 가장 큰 요인은 전문가의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분위기에 있을 것이다.

가령 교사가 참고서를 가져오지 않은 학생한테 집으로 가도 좋다고 하면 모든학생이 다 먼저 갈 이유를 댈 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제각각의 조건을 보고 교사가 대응을 해도 그 전문성을 인정해주면 문제가 생길 리없는데, 학생과 학부모, 학교의 관리역들이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교사는 원칙만을 고수하게 된다.

전문가들 자신이 전문성을 오염시킨 전례도 한 몫을 했다. 교수는 돈이나 이해관계에 의해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 사회에서는 교수의 추천만으로 청소부도 곧바로 명문대 대학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는데 재량권을 활용하는 사례가 많으니 제한하는 규정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전문가 도덕성 확립해야

알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는 몰라도 한국사회는 전문가가 전문성을 이유로 자의적 인권력을 휘두른 예가 너무 많았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전문가의 전문성을 막는 규정 또한 많다.

이 때문에 생기는 낭비는 얼마나 많을까. 조달청 건만 해도 동일 가격의 경우 2차 경쟁입찰을 통해 낙찰자를 뽑는다면 엄청난 국가 예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예산을 줄이지 못하더라도 운수 소관으로 국가 예산이 집행되는우스꽝스런 일은 막을 것이다.

민관 모든 영역에서 전문가에게 전문성을 돌려주는 쪽으로 시스템도 사회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다만 그러려면 공직자의 도덕성은 더욱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것이다.

고의적으로 탈세를한 헌법재판관은 검찰이 즉시 수사에 들어가고 재판부는 엄정한 판결을 내려 해임할 근거를 마련하는 원칙은 지켜주어야 할 것이다. 학교의 연구기금을 개인적으로 쓴 교수나 촌지를 받은 교사는 강단에 설 수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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