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무기, 미사일 등이 ‘불량국가’나 테러리스트에게 이전되는 것을 막기위해 2003년 5월 31일 제안됐던 대량살상무기(WMD)확산 방지구상(PSI) 2주년을 맞아 미국이 적용대상을 금융으로 확대하는 등 WMD의 원천봉쇄에 나서고 있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31일 국무부에서 PSI 참가 및 지원 60여개국 외교사절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기념식에서 “북한, 이란 등을 목적지로 한 미사일이나 핵 물질, 장비구입 시도를 저지한 지난 9개월 동안의 성과만 보더라도 PSI는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기념식에는 홍석현 주미대사와 위성락 정무공사도 참석했다.
라이스 장관은 “PSI에서 WMD 거래를 돕는 자들의 자금조달을 차단하고 있다”고 말해 PSI가 육ㆍ해ㆍ공을 통한 장비ㆍ물질 운송의 단속 뿐 아니라 금융거래 차단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이날 PSI 성공사례로 이란만을 거론했으나,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 2건, 이란 최소 2건, 또 다른 한 나라 최소 1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바우처 대변인은 대북 PSI의 경우 “다른 정부와 양자협력을 통해 화학무기 생산에 사용되는 물질의 반입을 저지했고, 또 다른 나라와 협력해 핵 프로그램에 유용한 물질의 이전을 막았다”고 덧붙였다.
라이스 장관은 앞서 4월 남미 순방길에 북한 핵과 관련해 “우리는 확산문제를 다룰 능력이 있다”고 말해 제재 수단으로 PSI 가동을 시사했다. 북한 제재수단에 대한 사실상 처음이었던 이 발언은 PSI를 활용하는 대북 해상봉쇄로 해석돼 파문을 일으켰었다.
미국은 PSI와 함께 방사능 물질을 탑재한 ‘더러운 폭탄’이나 핵무기의 미국 반입을 막기 위해 세계 공항ㆍ항구에 보안 설비를 강화하는 ‘메가포트(Megaports) 구상’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각국 10개 항구가 이 구상에 참가하고 있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30여개국이 추가로 미국과 협의 중이다. 미국은 이밖에도 선박납치방지조약개정안 추진 등 PSI와 병행하는 다양한 WMD 봉쇄 방안을 잇달아 내놓아 왔다.
미국이 북한, 이란 등의 핵 문제 해결 실패에 대비한 제재 수단으로 PSI를 거론하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채택이나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통한 압박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의 안보리 회부를 반대하고 있고, 유럽연합(EU)은 이란 핵의 안보리 행에 소극적이다. NPT는 핵보유국과 비핵국가 간 입장차로 비확산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엔을 거치지 않고 미국 주도 WMD 비확산을 지지하는 동맹국들을 연결하는 봉쇄망의 강화가 현실적이라는 게 미국의 생각이다. 유엔 결의 없이 미국 중심의 다국적군을 구성해 이라크를 선제 공격했던 것과 같은 발상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 PSI 현황·한국입장
PSI는 2003년 5월 31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행됐다. 정보를 공유하고 합동 군사작전을 벌여 핵물질, 미사일ㆍ생화학 무기 등을 실은 선박이나 항공기를 공해상이나 우방의 영해, 영공에서 압수 수색한다는 게 골자다.
북한과 이란이 작전의 주 대상이다. 같은 해 6월 1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일본 영국 독일 등 11개국이 참가한 첫 회의와 9월 파리 회의에서 선박정선과 수색 등 구체적 작전 계획이 합의됐다.
현재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핵심그룹은 호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미국 영국 캐나다 노르웨이 러시아 싱가포르 등 15개국이며 PSI에 지지를 표명한 국가는 60개국에 이른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해 4월 세계 모든 국가가 대량살상무기(WMD)의 밀매방지에 협력할 것으로 촉구하는 결의(154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해 PSI를 사후 승인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공해상에서 타국 선박에 대한 군사행동은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주장이 제기돼 PSI의 법적 근거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19개국이 참가한 미 플로리다 앞바다 다국적 군사훈련을 포함, 총 13번의 PSI 훈련이 실시됐다.
일본은 올 8월 싱가포르 주최로 실시되는 PSI 훈련에 자위대를 파견해 훈련 중 처음으로 승선검사를 하는 등 본격적인 작전참여를 계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PSI의 취지를 지지하나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작전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4월 “케이스별로 PSI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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