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최지향기자의 씨네 다이어리/ '극장전'이 아니라 홍상수의 '여관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최지향기자의 씨네 다이어리/ '극장전'이 아니라 홍상수의 '여관전'?

입력
2005.06.01 00:00
0 0

“응. 영화 속 여관 이야기랑 영화 밖 여관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어. 영화 속 여관에서는 남자애가 재수생이고 여자애는 안경점에서 아르바이트 해. 둘이 여관에 가는데, 자려다 실패해. 그러더니 갑자기 같이 죽자면서 수면제 왕창 사서 또 여관에 가서 약을 삼키는데, 그런데도 안 죽어. 영화 밖 이야기에서도 남녀가 여관 가서 자는데 여자 주인공은 이상하게 스타킹을 안 벗고 누워 있더라.”

누군가의 이런 ‘극장전’ 설명을 듣다 보면 이건 ‘극장전’이 아니라 완전 ‘여관전’이다.

여관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빠질 수가 없다. 교수 남편 둔 유부녀를 꾀어낼 경우는 호텔(‘생활의 발견’), 돈 좀 있는 남자인 경우는 시설이 좀 나은 여관(‘오! 수정’) 하는 식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리노베이션’이라는 단어와는 영 관계가 없는 오래되고 구질구질한 여관이 배경이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나왔던 대사 “이런 후진 여관에서는 그걸 안 하면 남는 게 없어”처럼, 이런 여관에서 가능한 일은 단 한 가지다.

여관으로 향하는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김영하 영화산문집 ‘굴비낚시’에서의 ‘오!수정’ 설명처럼 “한 번 달라는 남자와 쉽게는 줄 수 없다고 버티는 여자”가 등장한다.

여관까지 따라 들어가서도 앙 버티고(‘강원도의 힘’) 오래 사귄 남자 앞에서는 그렇게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면서도, 돈 많은 남자랑은 그냥 여관으로 향한다.(‘오! 수정’)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성현아는 “남자는 똑같아. 섹스만 원해. X새끼들”이라고 외치지만 결국 여관으로 향한다.

일단 버텨 보던 여주인공과 비교했을 때, ‘극장전’의 엄지원은 정말로 ‘친절한 지원씨’ 수준이다. 욕 한번 않고, 한 번 빼는 것도 없이 그녀는 이미 여관방에 누워 있다.

치근대는 김상경과 여관에 들어가서 짓는 표정은 “아, 이 불쌍한 남자들. 그냥 내가 하루 희생하지” 하는 식이니, 어쩐지 남자들의 소망을 듬뿍 반영한 좀 업그레이드 된 여주인공이 아닌 지 모르겠다. 남루한 여관이 아니라 배경을 월풀 욕조, 초고속 인터넷, 원형 침대 등 ‘럭셔리’ 모텔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최신식 여관으로 바꾼다면 이야기는, 과연 좀 달라질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