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미지의 두려움 '죽음' 더 나은 만남을 위하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미지의 두려움 '죽음' 더 나은 만남을 위하여

입력
2005.06.01 00:00
0 0

‘거듭나기 위해서, 생명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한번 죽지 않으면 안 될 것인 듯하다.’ 소설가 박상륭이 ‘죽음의 한 연구’에서 말하는 사생관은 매우 종교적인 것이다. 삶과 죽음이 불가분의 것이라며 부활이나 영생(永生) 또는 윤회를 굳게 믿고, 죽음 앞에서 그 신념에 의탁할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선택받은 종교인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죽음은 너무도 두렵고 곤혹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일찍이 생사학(生死學), 또는 죽음학을 뜻하는 ‘Thanatology’ 연구가 발달했다. 의료기술 발달로 안락사 등 생명윤리 논쟁과 함께, 자살이 심각한 현실적 문제가 되는 등 사회적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생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한국죽음학회’가 창립됐다. 그 동안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밝은 죽음을 준비하는 포럼’ 등 죽음 연구 모임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학회 이름으로 모임이 결성되기는 처음이다.

종교학을 전공한 이화여대 대학원 한국학과 최준식 교수가 초대회장을 맡고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 정재현(연세대) 김성례(서강대) 송위지(서울보건대) 교수, 윤영호 국립암센터 삶의질 연구과장 등 20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학회는 4일 서울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죽음, 그 의미와 현실-한국적 맥락에서’를 주제로 창립기념 학술대회를 연다. 생사학 연구가 왜 필요한지, 우리사회에서 죽음이란 무엇인지를 두루 살피는 자리다.

‘죽음에 관한 학문적 접근, 왜? 어떻게?’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맡은 정진홍 교수는 “죽음학은 죽음을 분명한 인식의 객체로 정의하려는 것도, 죽음 현상을 의학적으로 기술하려는 것도, 죽음의 사회학을 말하려는 것도,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고백을 다듬어 간직하려는 것도 아니다”라며 “그것은 정치, 경제, 과학적인 죽음 담론의 개념과 논리, 그리고 그것이 담고 있는 규범적인 가치,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울려 있는 우리의 죽음문화에 대한 되물음”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하지만 “우리의 어떤 죽음 담론도 그것이 죽음 자체에 관한 것인 한 실은 짐작 뿐이며, 따라서 담론의 마지막은 언제나 그렇다고 승인된 사실에 대한 고백이라고 해야 더 옳다”고 강조한다.

최준식 교수는 ‘이른바 근사(近死) 체험이란 무엇인가’라는 발표에서 19세기말 이후 서양의 보고 사례를 들어 “죽음은 혼령의 체외 이탈, 깜깜한 터널 통과, 빛과의 만남, 지나온 생에 대한 회고의 순으로 체험되며, 근사 체험자는 일반적으로 삶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반물질주의 반경쟁주의 성향을 보인다”면서 “진정한 웰빙(Well-Being)은 그 반대 개념이자 보완개념이기도 한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생각이나 실천이 함께 있어야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의학적 입장에서 바라본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고찰’을 발표하는 윤영호 국립암센터 과장은 “명백히 죽어가는 말기 환자의 임종 전 검사와 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죽음의 고통을 연장하거나 오히려 유발한다”며 “이는 선행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을 인공적으로 유지함으로써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임종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의 사용, 고영양액 주사 등과 같은 특수치료는 이미 환자의 삶의 질 개선, 특히 품위 있는 인간적 죽음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는 시행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안락사 문제와 관련, 민감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주장이다.

그는 대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인 죽음의 과정을 따르게 하는 ‘호스피스 의료’”를 제시하고 “매일 수많은 암 환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 현실에서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호스피스제와 완화의료를 하루 속히 제도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범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