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프린터가 있지만, 그때는 무얼 프린트하자면, 학교 등사기를 이용해야 했다. 글짓기반이었던 우리는 우리가 쓴 동시를 묶어 몇 명이 나누어 가졌으면 했다.
그러자면 우선 등사지부터 구해야 했다. 어른들이 ‘가리방’지라고 부르는 기름종이다. 그 기름종이를 쇠줄판 위에 놓고 송곳 같은 철필로 글씨를 쓴 다음 그것을 다시 종이 한 장씩 아래에 대고 검은 등사 잉크가 묻은 로울러로 찍어내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등사지까지 이 선생님 저 선생님께 한 장 씩 얻고, 글짓기반에서도 글씨 잘 쓰는 아이가 친구들의 동시를 모아서 그것을 등사지 위에 깨알같이 쓰고, 다시 선생님의 도움으로 등사까지 마쳤다. 그것을 다시 문집 모양으로 만들었다. 지금 A4용지 절반 크기의 판형에 페이지 수도 10여 페이지가 넘었다.
제일 겉장에 ‘우리들의 글 잔치’라고 쓰고, 감나무에 감이 달려 있고 새가 한 마리 앉아 있는 삽화까지 그려넣었다. 그리고 그 아래 ‘송양초등학교 글짓기반’이라고 썼는데 돌아보니 꼭 37년 전의 일이다. 문집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추억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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