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펠트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의 마찰만 없었다면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자리를 차지했을 인물이다. ‘FBI의 황제’ 에드거 후버의 측근이자 2인자로서 국장 자리를 노렸고, 시국사범에 대한 사찰도 벌였다. 이 때문에 그의 고발은 정의를 위한 결단이 아니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딥 스로트’는 1972년 린다 러브레이스 주연으로 미국에서 개봉돼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최초의 합법적 포르노 영화(한국제목: 목구멍 깊숙이)의 제목이다. 같은 해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워싱턴 포스트의 특종이 잇따르자 누군지 모를 제보자에게 이런 별명이 붙었다. 펠트도 거명됐으나, 그는 79년에 펴낸 회고록 ‘FBI 피라미드’에서 이를 극구 부인했다. .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저서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에서도 그는 베일에 가려졌다. 접촉은 비밀리에 진행했다. 우드워드는 딥 스로트와 모두 7차례 만났으나 전화통화를 불신해 대개 새벽 2시 지하주차장에서 접선했다. 빨간 기를 꽂은 화분이나 배달되는 뉴욕 타임스에 시계를 그려넣는 식으로 날짜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펠트는 아이다호대, 조지워싱턴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42년부터 73년까지 FBI에 몸담았다. 62년 본부로 복귀한 이후 후버 국장의 신임을 얻어 출세가도를 달렸고 72년 5월 후버가 사망한 뒤 차기 국장을 꿈꾸었으나 낙마, 영원한 2인자로 남게 됐다.
그는 FBI 재직 당시 좌파 학생운동 멤버 지인의 집을 영장 없이 수색토록 허가한 일 때문에 78년 불법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돼 80년 유죄판결을 받았다. 2001년 심장발작을 일으킨 뒤 현재는 건강이 악화하고 기억도 쇠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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