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회색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이곳 서울의 거리에도 풋풋한 초록의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든다. 당장이라도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낯선 들판을 찾아가도,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산골마을을 찾아가도 초록으로 물든 산야가 반겨주고 따사로운 햇살이 포근하게 안아주는 행복의 계절이다.
그러나 이 계절이 만인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가오는 현충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장롱 깊이 간직해 두었던 하얀 치마 저고리를 손질하며 남몰래 눈물짓는 사람들이 있다. 6ㆍ25전쟁이 끝난 지도 반세기가 훌쩍 지났건만, 아직도 6월이 오면 소중한 가족을 조국에 바치고 쓸쓸히 살아가는 유가족의 가슴 속에 그날의 상흔이 생생하게 살아나곤 한다.
그리하여 정부에서는 6월을 호국ㆍ보훈의 달로 정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위훈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며 위대한 애국정신을 되새기고자 다양한 보훈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보훈정신이 국가발전과 국민통합의 토대가 되는 정신임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국민을 보면 6ㆍ25전쟁을 단순한 과거사로만 인식하고 점차 조국의 소중함도 잊어가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일부 사회지도층의 눈먼 자식사랑은 어린 자식의 병역 기피를 위해 국적까지 포기시키는 후안무치한 행태로 나타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사회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부재는 우리 국민들에게 국가보훈이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국내총생산(GDP)을 가진 경제 강국의 대열에 서 있다. 동북아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음에도 쉽게 고지에 다다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갈등과 분열이 큰 원인 중 하나라 생각된다.
선진국의 문 앞에 서 있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사회적으로 만연한 갈등과 분열을 아우르는 정신적 구심점을 찾아 국민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국민통합을 이룩할 수 있는 우리 국민의 정신적인 구심점, 그것이 바로 국가 보훈이라 생각된다
국가보훈이란 나라를 위해 공훈을 세웠거나 희생하신 분들을 예우하고 은공에 보답함은 물론, 그 분들의 애국충정을 오늘에 되살려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으로 승화시키고 이것을 토대로 영광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보훈이 곧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인 것이다.
조국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6월에 즈음하여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국가보훈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자. 국가보훈은 거창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공헌한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 우리 이웃에 사는 국가유공자 유가족을 예우하고 존경하는 마음.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익을 우선하는 자세. 주어진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는 주인의식 등이 모두 국가 보훈인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50돌을 맞는 현충일이다. 올해만큼은 온 국민이 나라 사랑하는 한마음으로 조기를 게양하고 오전 10시 정각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맞추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어보자. 조국을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던진 분들의 애국충정을 되새겨 볼 때 비로소 우리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정하철 서울지방보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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