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공동위)는 31일 3년2개월간의 활동을 마감했다. 양국 역사관의 실증적 검토라는 성과가 있었지만, 그보다 몇 배 큰 숙제를 남겼다. 무엇보다 공동위는 한일 역사학자들간의 엄청난 인식 차를 실증적으로 확인하게 된 계기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1일 공개된 양국 학자들의 55편 논문(2,000쪽 분량)을 포함한 최종보고서는 쟁점 사항인 임나일본부설, 일본 식민지 지배의 한국 근대화 기여 여부 등에 대한 양측 학계의 솔직한 주장을 담고 있다.
공동위 한국측 총간사인 조광 고려대 교수는 “1970년대 독일과 폴란드는 공통분모를 마련하기 위해 가장 먼저 역사 인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명히 규명하는 연구를 시작, 마침내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갖게 됐다”며 “이런 맥락에서 공동위는 첫발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공동위의 연구 결과
일본 역사학자들은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한일합병이 국제법적으로 합법이며 당시 열강들이 이를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항일민족운동이 활발했다면 왜 한반도가 스스로 독립하지 못했느냐고 강변하며 한국의 민족주의는 국가ㆍ국민의식이 희박하고 리더십이 결여돼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열강들이 약소국을 침탈하고 세계 지도를 마음대로 가른 제국주의 시대의 해악을 간과한 일본의 역사 인식이 충격적이다.
조 교수는“일본 학자들은 비록 조약이 힘의 우위로 맺었다고 해도 근대 국제법이 안고 있는 모순에 지나지 않아 조약 자체는 유효하다고 주장했다”며 “이 부분에서 한일간 공통분모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 학자들은 식민지배를 통해 경제개발이 이뤄졌다는 측면을 강변했다”면서 “우리는 그런 결과가 일본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하면서 식민지 백성의 한이나 눈물을 통계로 잡을 수 있으면 일측이 감히 개발론을 내세울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학자들은 또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일본의 식민지배 보상 의무가 소멸됐다는 일본 정부 공식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공동위의 한계
차이점의 확인이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연구성과는 불만족스럽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공동위를 통해 반복된 느낌이다.
조 교수는 “공동위의 일본 학자들은 교과서 문제 언급을 꺼리고 사관보다는 미시적인 실증 문제에 천착,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학자들이 일본 극우세력을 의식, 몸을 사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사실 이런 결과는 공동위 발족 당시부터 예견됐다. 한일 양국 정부는 양측의 역사인식 차이를 분명히 밝히는 기구로 공동위를 상정했고 공동위의 연구성과를 양국 교과서에 반영하지 않고 단지 ‘참고자료’로 활용하기로 절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구성될 2기 공동위는 이번에 확인된 차이점을 극복하고 그 결과를 양국 교과서에 반드시 반영하는 제도적인 틀로 운용돼야 한다.
박준우 외교부 아태국장은 “2기 공동위의 성과가 일본 역사교과서에 반영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달 하순으로 예정된 한일 정상회담이 2기 공동위원회의 성격과 기능을 어떻게 확정할 지 주목된다.
1기 공동위는 2001년 후쇼사(扶桑社)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을 겪은 뒤 구성돼 19개 주제를 놓고 50여 차례의 합동회의를 열면서 한일 관계사를 정리해왔다.
이 결과는 외교통상부(www.mofat.go.kr)와 교육인적자원부(www.moe.go.kr)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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