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유럽연합(EU)헌법 부결로 EU를 움직이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3국 정상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3선을 노리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사퇴압력을 받고 있고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유럽통합의 강력한 파트너를 잃어 고립 위기에 놓였다.
반면 EU헌법 반대 여론이 높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최초의 부결 국가가 될 것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이번 부결 파문의 최대 정치적 수혜자가 됐다.
회원국 중 처음으로 헌법 부결이라는 비난을 뒤집어 쓴 시라크 대통령은 40여년 정치 생애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대통령 재임 10년째를 맞은 올해 비준 국민투표에 정치생명을 걸다시피했기 때문에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야당은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등 정치적 공세로 삼을 작정이다. 전문가들은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시라크가 2007년 예정된 3선 도전의 꿈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럽의 중심국가로 EU창설과 EU헌법을 주도했던 시라크 대통령의 국제적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 전망이다.
슈뢰더 독일 총리는 프랑스 국민투표 직전 의회을 통해 비준을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유탄을 맞았다. 프랑스와 강력한 유대관계를 맺어 왔지만 프랑스 부결 파문으로 새로운 동맹을 찾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에 몰린 것이다.
대안으로 영국을 선택할 수 있지만 제1 보수야당인 기독교민주연합(CDU)의 당수 앙겔라 메르켈이 미국과의 경제동맹 등을 강조하는 블레어 영국 총리의 정책을 선호하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슈뢰더 총리는 22일 노르트라인_베스프팔렌 주 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후 연방하원 선거를 9월로 앞당겨 재신임을 묻는 승부수를 던진 상태다.
아예 프랑스과의 유대관계를 더욱 강화시켜 영국식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파벌을 만드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지만 유럽을 분열시켰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어 아직까지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반면 블레어 영국 총리는 최대의 행운아다. 반대여론이 유세한 가운데 내년 초 국민투표에서 EU헌법이 부결되더라도 유럽통합을 깬 원흉이라는 비난을 프랑스에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블레어 총리는 EU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반대해 왔지만 여론에 밀려 지난해 4월 국민투표 실시로 방향을 선회했다.
일각에서는 1일 치러지는 네덜란드의 국민투표가 부결될 경우 국민투표를 아예 취소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는 31일 “이미 방침이 확정했다”며 “잭 스트로 외무장관이 6일 하원에 출석해 이런 입장을 공식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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