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대로 가면 올해 성장률은 5%가 안될 수도 있다”는 한덕수 경제부총리의 발언(30일 밀레니엄 포럼 강연)은 큰 ‘충격’이다. 5%에도 못 미칠 것 같은 경제상황이 충격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미래를 장밋빛으로 색칠하던 경제부총리 입에서 잿빛 전망이 나왔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다.
이 발언에 대해선 경제사령탑으로서 저성장의 현실을 인정한 ‘용기있는 고백’이란 평가도 있고, 국민들의 경기기대치를 낮추고 추경 조기편성 분위기까지 조성하려는 고도의 ‘로우 키(저자세)’전략이란 분석도 있다. 하루 아침에 정부가 ‘5%가능’에서 ‘5%난망’으로 말을 바꿨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배경이 뭐든 한 부총리의 발언으로 정부는 스스로 채웠던 5% 성장의 족쇄를 홀가분하게 풀 수 있게 됐다.
사실 5%성장은 처음부터 목표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성장은 고용창출과 국민실질소득 개선을 위한 중간 과정일 뿐, 그 자체가 정책의 지향점은 아니다. 부동산 및 카드규제 해제로 2002년 성장률은 무려 7%까지 치솟았지만, 폭등한 집값과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카드부채로 서민들의 삶은 악몽 그 자체였다. 하물며 성장과 고용의 연결고리가 더 파괴되고 빈부격차마저 갈수록 벌어지는 현 시점에서, 정부가 그 동안 보여온 ‘5% 성장’ 집착은 공허함을 넘어 안쓰러움 마저 느끼게 했다.
중요한 것은 몇 %성장이 아니라, 경제의 질이다. 5%의 덫에서 빠져 나온 만큼 정부의 정책목표도 이젠 질적 개선에 맞춰져야 함이 옳다. 차제에 지금처럼 정부가 연간 성장률 목표를 제시하는 관행을 중기성장목표제로 바꾸든 아니면 고용이나 소득격차해소 같은 목표를 개발하든 심각히 재고했으면 한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