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숭산의 가르침 벽안의 제자들에 면면히…
한국 불교가 머나먼 미국 땅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올해는 1964년 서경보 스님에 의해 미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한국 불교의 미주 포교 40돌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지난 24일부터 30일까지 미 동부와 서부 일대의 한국 불교 사찰들을 방문한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등 순회법회단은 곳곳에서 한국 불교의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순회단이 처음 들른 곳은 동부 로드아일랜드주 컴버랜드시에 위치한 프로비던스 선 센터. 지난해 말 입적한 해외 포교의 선구자 숭산 스님이 1972년 설립한 관음선종의 본산이다.
6만여평의 고요한 숲 속에 선방과 법당, 요사채, 한국식 탑까지 갖춘 선원은 숭산 스님의 제자인 미국인 스님 5명과 재가 불자 18명이 숙식을 하며 수행하고 있었다.
선원장 대광 스님은 경허 만공 고봉 스님 등 한국 선사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법당에 앉아 “한국이 미국에 삼성과 현대 제품, 음식 등 많은 것을 수출했지만 맑디 맑은 한국 불교의 가르침에 비교할 만한 것은 없다”고 한국 불교의 미국 전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대광 스님은 또 “미국의 관음 선종과 한국의 조계종은 이번 생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생부터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한국과의 유대를 강조했다.
간화선(화두선)의 핵심은 고수하면서도 미국인들에게 맞게 참선법을 개발해 선원을 운영하고 있다. 새벽 5시에 108배를 시작으로 예불과 참선을 하며 저녁에도 예불과 참선을 한다.
미국의 60여 개를 포함, 전세계 32개국 120여 개 선원에서 한국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숭산 스님의 외국인 제자들에게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숭산 스님의 입적 후에도 선원들은 흔들림 없이 그의 가르침 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뉴욕시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샐리스 베리 밀스의 원각사. 역시 숭산 스님이 설립해 동부에서 가장 오래된 한국 사찰로 미국을 찾은 스님들이 한 번 씩 거쳐가는 교두보 같은 곳이다.
법안 스님이 불교대학 등 불사를 많이 해 한때 신자 수가 1,000명을 넘은 적도 있으나 요즘은 150가구, 500명 정도다. 한편 서부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의 산 속에는 숭산 스님의 미국인 제자 무량 스님이 순수 한국식 사찰로 짓고 있는 태고사가 있다.
대웅전과 요사채는 이미 완공됐고 앞으로 선방, 암자, 일주문, 사천왕문 등을 지을 계획이다. 무량 스님은 “절을 찾는 이들이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 외에도 로스앤젤레스의 관음사 고려사 달마사 등 재미 동포 사회의 성장과 역사를 같이 해 온 미국의 한국 사찰은 100여 개에 이른다. 이 중 조계종 스님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 동부 40여곳, 서부 50여 곳으로 80%이상이다.
그러나 이 사찰들 대부분이 영세하다. 뉴욕 불광선원 주지 휘광 스님은 “거의 전부가 스님 1~2명이 개인적인 원력으로 창건한 것”이라면서 “전체 신자수는 동부 4,000~5,000여명, 서부 1만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런데 한국 사찰에는 미국인 신자가 거의 없다. 한국 스님들의 영어 구사력이 부족해 미국인에게 가르침을 제대로 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한국 불교는 그래서 동포 사회에는 뿌리를 내렸지만 백인 등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포교는 숭산 스님의 제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달라이라마가 한 번 법회를 하면 수 만 명씩 현지인이 참석하는 티베트 불교와 불교 이론이 널리 소개된 일본이나 중국 불교 등에 비하면 한국 불교의 위상은 아직 미미하다.
뉴욕 마하선원의 서천 스님은 “한국 불교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아 미국인들은 불교 국가 하면 티베트, 태국 등을 꼽는다”면서 “미국에 있으면서도 미국인에게 포교를 하지 못 해 안타깝다”고 했다. 시주나 기도, 제사, 복을 비는 등의 한국 불교 풍속이 미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 점도 포교의 큰 장애 요인이다.
사찰 운영의 가장 큰 애로점은 열악한 재정. 한국과 달리 처음 사찰을 창건할 때 모기지나 렌트로 빚을 많이 지는데다, 시주 문화가 없고 신자 수가 적기 때문이다. 근근히 사찰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현재 한국 스님들은 교민들을 상대로 한 포교, 외국인 제자를 두는 등 현지인을 상대로 포교하는 숭산 스님식의 포교 구도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한국 불교의 미래는 밝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불교 신자가 증가하는 추세인 데다, 숭산 스님이 소개한 바 생동감 있고 활발 자재한 한국 불교의 간화선 수행법이 미국 지식인 사회에 일으킨 신선한 충격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28일 뉴욕에서 동중부승가회 주최로, 2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남가주불교사원연합회 주최로 열린 법장 총무원장 초청 법회에는 수백명 씩 동포 신자들이 참석해 뜨거운 한국 불교의 열기를 느끼게 했다.
현지 스님들은 조계종이 종단 차원에서 불교문화센터 건립, 해외 교구 설치 등의 지원을 해 주면 한국 불교가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장 총무원장도 “동포를 대상으로 한 포교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현지인 포교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스앤젤레스=남경욱기자 kwnam@ hk.co.kr
■ "한국 불교학 전공 학자 아직 없어"
“애석하게도 한국 불교를 가르치는 교수는 없습니다.”
27일 오후 미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시의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소. 도널드 스웨어 소장과 중국 불교 담당 로버트 지멜로 교수가 연구소를 방문한 조계종 법장 총무원장 일행에게 하버드대의 불교학 연구 동향을 설명했다.
2차 대전후 30년 동안 하버드대에서 불교를 가르치는 교수는 일본인 교수 1명뿐이었으나 지금은 불교 전공 교수가 모두 8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태국 불교를 전공한 스웨어 교수가 불교학 교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종교연구소 소장으로 최근 임명될 만큼 불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 불교학 교수들은 인도, 티베트, 중국, 일본, 동남아 불교 등을 전공하고 있을 뿐 한국불교 전공자는 없다고 지멜로 교수는 아쉬워했다.
불교신문 사장 향적 스님이 한국 불교에 대한 관심이 적은 이유를 묻자 지멜로 교수는 “중국 불교나 인도 불교 연구의 역사는 긴데, 한국 불교를 연구한 기간은 짧다”면서 “일본 불교에 신라의 의상 대사나 고려의 지눌 스님의 사상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스웨어 소장도 “중국과 일본인은 미국에 정착한지 오래된 반면 한국인은 미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멜로 교수가 “한국 불교의 특징은 일본처럼 여러 종파별로 나뉘어 있지 않고 선(禪)과 교(敎)가 잘 융합돼 있는 통합성에 있는 것 같다”며 운을 뗐다.
이에 법장 총무원장은 “한국 불교를 통불교라고 하지만 이론과 지식을 뛰어넘어 깨달음에 이르는 간화선을 기본으로 염불, 간경(看經) 등 다른 수행법을 곁들이고 있다”면서 “간화선의 전통을 세계에서 유일하고 보존하고 있는 곳이 한국 불교”라고 강조했다.
성철 스님의 사상을 연구한 지멜로 교수는 “한국 불교의 특징이 깨달음을 단박에 이루는 돈오(頓悟)에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여러 수행법이 잘 어우러져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학생들에게 중국 송(宋)대의 불교 풍속을 알고 싶으면 한국의 선방에 가보라는 말을 한다”고 화답했다.
1960년 설립된 세계종교연구소는 초창기에는 기독교와 유대교만을 연구했으나 지금은 신학 미학 역사학 인류학 등과 연계해 세계의 여러 종교를 연구하고 있으며, 박사 과정에 600여명의 학생과 교수들이 거쳐갔다.
캠브리지=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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