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보건사회연구원이 우리나라 빈곤인구가 5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9명 중 1명이 빈곤에 허덕이는 셈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보리고개 타령하던 시절도 아니고, 노숙자가 넘쳐나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상황도 아닌데 왜 이리도 빈곤 문제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한국은 지난 40여년간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빈곤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 온 지구상에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IMF위기시 확대된 빈곤과 소득 격차 문제도 경제가 회복되면 자연스레 해소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낙관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가고 있다. 지난 1분기 소득계층 상위 20% 가구의 소득이 최하위 20% 소득의 8.22배로 역대 최고기록을 또다시 경신하였다. 빈부 격차가 심하기로 소문난 미국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건가?
전례 없는 현상이기에 구조적인 차원에서 원인을 찾아 봐야 한다.
첫째, 산업구조의 변화로 일자리가 양극화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늘어난 전체 일자리수가 290만1,000개인데 임금 등을 기준으로 할 때 상위 1~3위급 일자리가 118만 7,000개(40.9%)를 차지하고, 8~10위급 일자리가 144만8,000개(49.9%)를 차지한다.
그 중간인 4~7위급에서 늘어난 일자리는 고작 26만6,000개(9.2%)에 불과하다. 고부가가치 지식ㆍ정보산업이 요하는 지식과 기술 습득에 뒤쳐질 수 밖에 없는 중하위 빈곤계층이 갈 곳은 저급 일자리밖에 없는 형편이다.
둘째, 노동시장의 양극화 때문이다. 동일 직장 내 동일 직종이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 격차가 2배 이상 벌어지고 있다. 나이, 경력, 학력 등의 특성을 감안하여도 비정규직이라는 ‘낙인’ 때문에 임금 수준이 20~27%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셋째, 조세와 사회보장제도가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인 한, 시장 소득은 어느 나라나 불평등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진세제를 통해 그리고 사회보장 이전지출을 통해 가처분소득의 격차를 줄이는 게 선진 복지국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세와 사회보장제도로 인한 소득 불평등 축소 효과가 4.2%에 불과하다. 스웨덴의 47.6%, 프랑스의 33.3%, 하다 못해 미국의 16.3%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고소득 자영업자, 고액 자산소득자들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조세행정의 거대한 구멍과 함께, 저소득층이 보험료를 납부 못해 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회보험의 거대한 사각지대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최저임금도 현실화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의 급부대상을 확대하는 정책적 배려가 우선 시급하다. 하지만 원인이 구조적인 만큼, 대증처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먼저 1차적으로 노동시장 내에서, 근로 빈곤층에게 교육과 훈련 기회를 확대해 이들이 저임금 일자리에 갇히지 않고 상승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네델란드처럼 다양한 고용 형태를 가능한 한 모두 합법화하되 대신 법의 테두리에서 최대한 보호해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 때 현재의 지나친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자제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맞바꾸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2차적으로 노동시장 밖에서는, 저소득층을 사회보장의 울타리로 끌어들이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이 때 보험료를 국가가 함께 지원해 사회보험 가입을 유도하여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게 급선무다.
빈곤에 허덕여 사회보험료를 내고 싶어도 못 내는 근로빈곤층에게, 보험료 납부 독촉은 또 하나의 서러움이요 채찍일 뿐이다. 당장 재정 부담이 걱정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ㆍ기업ㆍ근로자가 3자 분할하여 필요 재원을 마련해 놓는다면 장기적으로 국가의 사회보장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참여정부의 빈부 격차 해소 로드맵에 단기 대책과 장기적인 구조적 대응책들을 조화롭게 담아 성공적으로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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