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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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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고래

입력
2005.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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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 사이소, 재첩국.” 한 세대 전만 해도 부산을 비롯한 남동 해안 지역에서 흔히 듣던 소리다. 서울의 밤 골목에 울려 퍼지던 “메밀묵 사려, 찹쌀떡”처럼 사라진 소리가 됐지만 특유의 억양과 울림은 지금도 귓가에 선하다. 그때 고래고기는 어쩌면 쇠고기보다 흔했다.

1986년 고래잡이가 완전히 금지된 후 중심 항구인 장생포에조차 이제 고래고기 전문식당은 실낱 같은 상징으로만 남았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리메이크한 마야의 ‘고래사냥’이 울려 퍼져도 고래를 잡겠다고 동해로 떠나는 사람은 없다.

■돌고래나 범고래의 멋진 쇼나 인간과의 우정을 그린 영화 등을 통해 고래는 개처럼 인간에 친숙한 동물이 됐다. 그러나 인간과 고래의 만남은 악연으로 시작됐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언양 대곡천의 반구대 암각화에는 귀신고래로 추정되는 수십 마리의 고래가 새겨져 있다. 유유히 바다를 가르며 물보라를 내뿜는 평화로운 풍경의 묘사가 아니다. 작살이 꽂힌 고래, 수십 명의 선원들에게 끌려오는 고래가 선명하고, 새끼를 업은 어미고래조차 사슴 등 다른 뭍짐승과 마찬가지로 사냥의 표적으로 그려졌을 뿐이다.

■고래는 인간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먹이가 풍부하고, 안전한 바다로 떠났다. 그래도 인간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뛰어난 사냥꾼 본능을 타고난 인간은 낚시나 그물로 작은 물고기를 잡는 데 만족하지 못했다. 배를 부릴 줄 알게 되자 곧바로 산짐승을 사냥하듯 연안의 고래를 잡았고, 항해술이 발달하자 아예 지구를 돌며 고래를 쫓았다.

‘백경’의 에이허브 선장은 흰 고래 ‘모비 딕’에 대한 복수심에 불탔다. 그러나 길고 험한 그의 추격전은 사냥의 기억을 은연중에 더듬어 온 인간의 비정한 역사이기도 하다.

■ 안도현의 시 ‘고래를 기다리며’는 이렇게 끝난다.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동해에 고래가 돌아오고 있다. 산짐승에 의한 농업 피해 비슷한 어업 피해도 거론된다. 울산에서 개막돼 6월24일까지 열리는 국제포경위원회(IWC) 총회에 맞춘 상업포경 재개 주장의 근거이기도 하다. 돌고래나 밍크고래의 귀여운 모습과 사냥 본능이 넘실대는 핏빛 바다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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