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홈런 타자 새미 소사의 친필 사인 나무 배트, 2004년 월드시리즈 우승팀 보스턴 레드 삭스 선수들의 친필 사인 모자, 박찬호와 김병현의 사인볼, LG트윈스 야구단 사인볼….
서울 여의도 LG 쌍둥이 빌딩 서관 17층에 있는 LG필립스LCD 구본준 부회장의 집무실에 들어서면 그의 야구사랑이 한 눈에 느껴진다.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아는 지인들이 하나 둘 모아 선물한 수집품이 집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구 부회장이 30년 넘게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야구광’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 요즘도 짬만 생기면 야구장을 찾는다. 경기 관전이 아니라 감독 겸 현역 선수로 마운드에 서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야구 명문 경남중에 입학하면서 야구와 인연을 맺은 그는 8년 전인 1997년부터 경남중ㆍ고 기수별(24회) 야구팀 감독 겸 선수로 뛰고 있다. 2주전에는 기수대항 대회에 투수로 출전,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구 부회장의 야구실력은 ‘선수로 나섰어도 보통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특출나다.
“20대 한참 펄펄 날 때는 당시 고무 야구공으로 6~7할대를 쳤어요. 지금 하드볼로 하면 8할대를 넘는다고 봐야죠. 엄청난 실력이죠. 한번은 정식 야구 경기장에서 중월 홈런을 때려 깜짝 놀라게 한 적도 있습니다. 야구를 계속 했다면 굉장한 선수가 됐을 거예요.” 그의 경남중 동기이자 요즘도 야구를 함께 하는 동료 허구연 야구해설가의 ‘증언’은 ‘과언’이 아니다. “공도 잘 쳤지만 던지기도 잘했고, 지금은 기수 야구팀 감독을 맡아 최고팀으로 키우는 등 야구에서도 팔망미인입니다”
올해 54세인 구 부회장은 요즘도 머리가 먼저 들어가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의 과감한 주루 플레이로 주변을 놀라게 한다. 그의 과감성은 경영에도 녹아 있다.
2001년 초박막 액정화면(TFT_LCD) 사업이 공급과잉으로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을 때 LG필립스LCD는 1조6,000억원에 달하는 당시 세계 최대규모의 5세대 LCD 생산라인을 건설중이었다. 시장조사기관의 비관적인 LCD 시장예측과 주변의 우려가 비등했다. 하지만 그는 “LCD 가격이 충분히 떨어졌고, 새롭게 LCD 모니터 시대가 오면서 2002년에는 반드시 시장상황이 반전될 것”이란 확신으로 5세대 생산라인 건설을 밀어부쳤다.
그의 예측과 전략은 적중했다. LCD 시장은 이듬해 공급부족으로 돌아서면서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계획대로 그 해 5세대 생산라인의 양산에 들어간 LG필립스LCD는 2002년 세계 1위 자리에 등극했다. 1998년 5위에서 4년만의 성과다.
현장을 중시하는 구 부회장은 집무실보다는 공장에서 보고를 받는 것을 즐긴다. 지난해 1년 동안 60회의 국내외 출장을 다녔고, 그 중 절반이 해외출장으로 출장거리만 지구를 4바퀴 가량 돈 거리(15만㎞)다. 현장에서 그는 임원진과의 회의 외에 대리급 이하 사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를 꼭 챙긴다.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연인원 4,000여명의 사원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필드’의 얘기를 들었다.
구 부회장은 최근 들어 사내 인사말을 ‘확실히 1등 합시다’로 바꿨다. 시장점유율과 생산규모라는 양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기술력, 수익구조, 일등인재 등 질적인 면에서도 명실상부한 1등이 되자는 의미다.
“야구는 타이밍의 경기다. 타이밍에 맞게 작전을 구사하고, 팀원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이길 수 있다. 기업경영도 수시로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는 전략을 신속히 수립하고 전 임직원이 한 뜻으로 실행해야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LG필립스LCD는 내년 상반기 양산을 목표로 경기 파주 디스플레이 클러스터와 7세대 LCD 생산라인을 건설중이다. 최근 세계 LCD 시장은 공급과잉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구 부회장의 이번 투구가 또다시 멋진 ‘스트라이크’가 될 지 지켜볼 일이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