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오는 한국 사람들은 복잡한 외국인 관리 절차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비자를 받기 위해 초청장이 팩스가 아닌 원본으로 와야 하며, 초청장 발급도 초청기관이 아닌 해당 구청의 여권과에서 발급한다. 그러니 적어도 석 달 전에는 초청장을 신청해야 하는데 일 많고 정신 없는 한국 사람이 세 달 전에 미리 여행 일정을 짜놓기가 어디 쉽겠는가?
게다가 외국인 등록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는 장기 거주 외국인만 3개월 내에 신고하면 된다. 하지만 러시아는 입국 후 3일 내에 해야 한다. 물론 안 하면 불법 체류자가 된다. 이런 사정 모르고 러시아에 온 사람들은 벌금을 물게 된다. 더욱이 거주지를 신고할 때는 국가에서 지정한 비싼 호텔이나 아는 사람 집에 머물러야 한다.
이 정도면 아마 러시아에 오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사회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고 최근 체첸 테러 때문에 외국인에 대한 감시가 심해진 탓이다.
러시아는 그렇다고 해도 세계화를 외치는 한국은 왜 이렇게 외국인이 살기 힘든 걸까? 한국은 친절, 편리, 그리고 신속함의 나라지만 출입국 관리 업무에서만은 예외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의 경우 석사를 마치는 데 내국인 학생의 경우에도 2년 반에서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러시아 유학생에게는 비자가 1년밖에 안 나온다.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려면 비자를 적어도 3번 연장을 받아야 된다.
신청인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인데도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학생증이나 재학증명서를 잘 믿지 않는다. 출석부나 성적표까지 보여 달라고도 했다. 재미있는 건 미국과 같은 유럽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비자 가지고 불평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이 불법으로 돈을 벌고 있는데 그것이 불법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물론 외국인 중에 범죄자도 있고 나쁜 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은 범죄자가 없는가? 외국 사람이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을 좋아한다. 내가 한국에서 공부하는 이유는 돈 많이 벌거나 러시아에서 한국 유학한 것이 도움이 돼서가 아니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유럽이나 미국으로 갔을 것이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을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에게도 한국은 쉽게 살기가 어려운 곳이다. 한국을 왜 고요한 동방의 나라라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이번에 내 졸업 논문은 무사히 통과됐으니 비자를 연장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한국에 온 유학생들이 좀더 편안하게 공부했으면 한다.
아나스타샤 수보티나 러시아인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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