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통합의 ‘로드맵’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경제블록화에 성공한 유럽이 유럽연합(EU)헌법을 통해 정치적 통합을 추진했지만 이번 프랑스의 비준 부결로 치명타를 입었다. 정치적 통합의 제동뿐 아니라 유로권 확대도 당분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프랑스의 EU헌법 부결은 유럽 정치통합에 대한 회의론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EU의 창설과 헌법 제정을 주도한 프랑스는 유럽의 여론을 이끄는 ‘정치적 수도’를 자임해 온 터여서 이번 부결사태는 다음달 1일 치러지는 네덜란드의 국민투표 등 다른 회원국들의 비준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네덜란드마저 프랑스의 전례를 따른다면 ‘부결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EU 지도부가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헌법 내용을 수정하는 처방을 내린다 하더라도 회원국들이 이 과정에서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어 분열은 가속화할 수 있다.
프랑스 비준 실패는 EU의 동진정책,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전망이다. 우선 동진정책의 차질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5월 동유럽을 비롯한 10개국이 대거 가입한 이래 일자리 상실 등을 우려하는 서유럽 회원국들의 불안감이 이번 프랑스 국민투표에서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2007년 가입일정이 확정돼 있고 우크라이나는 가입자격을 논의하고 있다. 독일 집권 사회민주당 소속인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은 “이번 부결은 유럽통합과 관련해 완벽한 퇴보”라고 평가했다.
특히 반대 여론이 60%에 육박하는 네덜란드는 지난해 종교분쟁을 일으킨 이슬람 국가 터키의 가입을 극도로 꺼리고 있어 올 10월부터 시작되는 터키의 가입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압둘라 굴 터키 외무장관은 이와 관련, “터키의 가입협상이 이번 일로 영향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경제에서는 유로화 확대가 차질을 빚고 유럽경제가 시너지효과 없이 스태그플레이션(경제불황 속 물가상승)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중국 인도 등의 신흥 개발도상국들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통합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면 신규 가입국들이 자국 통화를 포기하고 유로화를 채택하는 모험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로화는 이날 1.25달러까지 하락했다. 폴란드 등 동유럽 회원국들은 가입 이후 예상보다 자국의 경제가 좋아지지 않았다며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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