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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생태육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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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생태육교

입력
2005.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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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지역 도로를 달리다 보면 동물들의 윤화 현장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사고를 당한 지 오래지 않아 어떤 동물인지 구분할 수도 있지만 수없이 지나간 바퀴에 눌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체가 가루로 흩날려 사라지기 전까지 동물들은 죽어서도 바퀴의 가해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다.

도저히 동물들이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은 고속도로나 도시 고가차도에서도 윤화 현장은 발견된다. 버려진 애완동물이거나 길을 잘못 든 야생동물일 텐데, 죽음의 길로 접어든 사연이 궁금할 뿐이다.

■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로드킬(road kill) 실태조사팀에 의해 확인된 멸종위기 야생 삵의 실화는 이 땅에서 동물이 살아간다는 것이 기적 같은 일임을 말해준다. 이 야생 삵은 지난해 12월 지리산 북쪽 88고속도로 위에서 트럭에 치어 기절한 상태로 한국도로공사 순찰팀에 발견됐다.

‘팔팔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야생 삵은 야생동물구조센터로 옮겨져 기력을 회복한 뒤 지리산 남서쪽 자락에 방사됐다. 목에 전파발신기를 단 팔팔이는 북진을 계속해 해발 700m의 밤재를 넘어 고향에 도착, 마음껏 뛰노는 모습이 망원경에 잡혔다. 그로부터 4일 뒤 전파발신기의 신호음은 끊겼고 팔팔이는 처음 사고를 당했던 고속도로 상에서 갈갈이 찢긴 사체로 발견됐다.

■ 서울시가 도로와 건물 등으로 단절된 서울의 녹지를 잇는 생태연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한다. 2015년까지 단절된 녹지 중 연결이 가능하고 생태적 중요성이 큰 24곳을 폭 20m의 생태육교(에코브리지)로 연결, 자연생태를 복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숲에 목마른 시민들의 산책로는 될 수 있어도 동식물들의 단절된 서식공간을 이어줄지 의문이다.

야생동물들이 사람의 간섭 없이 자유로이 이동할 수 없다면 생물 종의 다양성 유지 및 증진이라는 온전한 생태육교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

■ 하기야 인간에게 생태육교가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고향이 고속도로로 잘리거나 도시화하면서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폐촌에 남아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도시로 내몰려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

서식지를 빼앗긴 야생동물들처럼, 인간들도 포근한 자연과 인정으로부터 격리된 또 다른 섬 속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들에게 누가 생태육교를 놓아줄 것인가.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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