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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헤지펀드, 세례 받나

입력
2005.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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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와 종교가 만났다.

미국 헤지펀드 업계가 가톨릭계 자금유치를 위한 금융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종교와 금융상품의 조우는 1970년대 시작됐지만 가톨릭은 헤지펀드를 외면해왔다. 비밀투자로 고수익만을 추구하는 헤지펀드가 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자 시장여건 악화에 고전하는 헤지펀드 업계가 고개를 숙이고 ‘청지기’를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투자철학의 최상단에 ‘고수익’ 대신 ‘윤리’를 올려놓고 가톨릭계에 구애하고 있다. 미 최대 금융기관 AIG는 가톨릭계 병원에서 3억~6억 달러 투자유치가 가능한 ‘굿 스튜어드 펀드’를 최근 출범시켰다. 멜론 파이낸셜과 텍사스의 석유재벌 배스 일가도 유사 펀드를 만들었고, 가벨리 자산운용은 내달 1일 가톨릭계를 겨냥한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가톨릭계도 과거와 달리 헤지펀드를 기피만 하진 않고 있다. 헤지펀드 규제강화로 비밀투자가 줄고 투자내역에 대한 ‘스크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의 만남에 대해 헤지펀드가 종교에 의해 정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금융상품에 대한 종교ㆍ윤리의 개입은 베트남 전 반대 목소리가 높았던 1971년 군수산업 투자금지를 조건으로 내건 ‘팍스 펀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퀘이커교는 200년 전부터 비폭력 원칙에 위배되는 기업에 투자를 거부해왔다.

이후 ‘사회책임투자(SRI)’ 로 분류되는 이런 펀드는 계속 몸집을 불려, 현재 SRI시장은 1,5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종교 교리에 위배되는 투자제한 업종은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확대되는 양상이다. 70~80년대는 인종차별이, 90년대는 환경오염ㆍ노동착취 업종이 주된 제한 대상이었다. 지금은 술, 담배, 도박, 낙태, 산아제한, 인간배아 줄기세포연구, 포르노, 무기제조 등이 단골 목록이다. 헤지펀드는 아니지만 대표적 가톨릭계인 ‘아퀴나스 펀드’는 소액주주 운동까지 벌이고 있고, 낙태에 반대하는 ‘아베 마리아’ 펀드는 연 9.9%의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이슬람 교리에 입각한 펀드로는 술 포르노 도박은 물론 고리대금업 투자를 금지하는 ‘아만나 성장펀드’가 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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