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술의 다양한 풍경들을 섭렵하는 기획전 ‘20세기로의 여행: 피카소에서 백남준으로’가 28일부터 덕수궁미술관에서 시작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네덜란드 스테델릭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2005년 첫 국제전이다. 스테델릭미술관은 뉴욕의 모마(MOMA),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함께 현대미술 분야에서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미술관은 전시회에 ‘원작으로 보는 현대미술 교과서’를 부제로 붙였다. 전시작은 피카소, 브라크, 레제, 야블렌스키, 몬드리안, 칸딘스키, 마르셀 뒤상, 잭슨 폴록, 제프 쿤스 등 스테델릭의 대표 소장품 71점과 앤디 워홀, 최정화, 이불 등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42점을 합쳐 모두 113점. 추상파, 입체주의, 야수파, 러시아 절대주의, 표현주의, 개념미술, 팝 아트 등 그야말로 20세기 미술사의 흐름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회화 뿐 아니라 신디 셔먼, 로버트 롱고 등 현대 사진의 대가들과 백남준, 브루스 나우먼, 길버트 앤 조지 등 비디오아트 작가들의 전설적 작품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그러나 미술관은 이들 유파를 하나 하나 설명하지는 않는다. 대신 르네상스의 엄정한 형식주의에 반기를 들고 인간 감성의 극대화를 추구한 모더니즘 정신이 시차를 두고 유파를 초월해 어떻게 변주, 재해석됐는지를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덕수궁미술관 정준모 관장은 “미술 자체의 역동성을 보여 주고 관객이 현대 미술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는 ‘여지’를 남겨주고자 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전시회는 교과서라기 보다는 ‘대안교과서’적이다.
전시관은 크게 ‘추상’, ‘표현’, ‘개념’ 등 3개 주제로 나뉜다. ‘추상’은 대상을 바라보는 고정된, 또는 단 하나의 시각은 존재하지않는다고 냉소한 피카소의 ‘기타가 있는 정물’로 문을 연다. 얽히고 설킨 나뭇가지도 궁극적으로는 직선과 곡선으로 환원된다는 몬드리안이나, 날카로운 철필로 화폭을 찍어대 구멍을 냄으로써 평면성을 극복하려는 쿠넬리스 등이 한데 모였다. 보이는 것의 재현을 넘어서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작품들이 한데 전시된 파트.
‘표현’은 객관적 관찰보다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이미지, 혹은 목소리를 담으려 한 시도들을 추적한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색채나 붓질을 마음껏 구사했던 블라맹크나 화면을 가득채운 엄정한 색면회화로 인간의 정신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던 마크 로스코 등이 전시됐다.
‘개념’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 1917년 ‘R.Mutt’라는 사인이 든 소변기를 버젓이 유명전시회에 ‘작품’으로 내놓음으로써 세계 미술계의 전위로 떠올랐던 마르셀 뒤상과 그로부터 시작된 개념미술의 다양한 전개가 눈길을 잡는다. 페미니즘과 성을 주제로 한 신디 셔먼, 프라다 부츠차림의 여성 집단누드를 통해 육체와 정체성의 문제를 담은 바네사 비크로포트의 사진작업, 손 씻는 장면을 집요하게 보여줌으로써 현대인의 강박증을 보여주는 브루스 나우먼의 비디오아트, 사이보그를 통해 이미지 복제 시대를 갈파한 이불의 설치작품 등이 전시됐다.
정준모 관장은 “현대미술이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보는 관점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흥미로운 미술사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미술관은 일반인들의 관람편의를 위해 주중 매일 오전 11시에는 큐레이터가 작품설명과 안내를 맡는 가이드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전시는 8월15일까지. (02)2022-0616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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