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지음시와시학사 발행ㆍ9,000원
“제발 내 시에서 은빛 찬란한 호각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는 서원을 세운 시인 이시영(56)이 꼭 1년 만에 새 시집을 냈다.
몽고말로 ‘소똥의 향기’란 뜻의 ‘아르갈의 향기’란 이름이 붙은 이 시집은 ‘은빛호각’(2003)부터 ‘바다호수’(2004)에 걸쳐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경외를 보여준 그의 시 계보에 충실하다. 시인은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저녁 무렵 양떼를 몰고 초원을 달려온 몽골 소년들은 어머니 겔에서 피어 오르는 소똥 향기를 보고 지극한 평화를 느낀다고 한다. (중략) 나도 그 초원에 서서 아르갈의 연기가 퍼져 오르는 것을 보고 고향의 훈훈한 저녁을 상기한 바 있다.”
그에게 ‘아르갈의 향기’는 수 십 년간 자신이 몸담았던 문단이자 “1972년 2월 바람 부는 졸업식장에서 상으로 받은 14K 가락지를 단 하루도 손에서 빼지 않았던 어머니”(‘14K’)이고, “무덤들만 거북이처럼 목을 빼고 양지 녘을 행해 기어오르고 있는 고향”(‘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이다.
그 그리움의 대상들을 시인은 “재두루미처럼 무릎을 꺾고 춤을 추면서 가비얍게 바람에 맞서고 있는 우리나라 소나무”(‘익산을 지나며’)같은 ‘시어’로 복원한다. 1980년 2월 창비에 입사해 2003년까지 편집장과 주간, 부사장을 지낸 시인이 들려주는 ‘문단약사’에는 따뜻함이 가득하다. 그곳에는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우는 것을”이라고 읊었다가 금세 “벙어리도 꼬집히면 우는 것을”로 정정해 미당에게 “됐네, 이 사람아!”라고 지청구를 듣는 김동리가 있고(‘젊은 동리’), 고은이 박카스 병에 숨겨간 코냑을 벌컥 들이키는 소설가 황석영도 있다. (‘특별면회’)
“새끼 청개구리들이 함뿍한 이슬을 털며 콩잎 사이를 건너뛰다 햇빛에 반짝 여린 다리가 미끄러지곤 했던”(‘청개구리’) 유년 시절이나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던 사당동 재개발 시절, 고무장화 신은 스승을 따라 취직에 꼭 필요한 재정보증을 받기 위해 동사무소를 따라 나섰던”(‘재정보증) 청년시절도 시인에게 향수의 원천이긴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시인이 ‘회고’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 우리가 금세 잊어버린 과거를 시를 통해 복기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그가 진정으로 머무는 경지는, 세월과 함께 더불어 얻은 혜안으로 응시하는 세상이다. ‘해 잠기는 옅은 강에 송사리들이 몰려 헤엄치고 있습니다. 강물이 내려다보곤 잠시 생각에 잠기다간 이내 자기의 길을 무연히 갑니다.’(‘삶’)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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