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ㆍ민찬홍 옮김뿌리와이파리 발행ㆍ1만5,000원
당연한 전제에서 출발한 일이 엉뚱한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수식을 풀어나가는 상황이다.
1. 가정 x=1
2. 그러면 명백히 x=x
3. 양변을 제곱하면 x²=x²
4. 양변에서 x²을 빼면 x²-x²=x²-x²
5. 양변을 인수분해 x(x-x)=(x+x)(x-x)
6. 양변을 (x-x)로 나누면 x=(x+x)
7. 즉 x=2x
8. x=1이므로 1=2
좀 어리둥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함정은 6번 양변을 (x-x)로 나누는 대목이다. 나누는 값이 0이다. 0을 곱한 수는 모두 0으로 같아지지만, 그렇다고 곱한 수까지 같지는 않다.
흔히 역설(패러독스)이라고 부르는 이런 상황의 상당수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근본적인 패러독스는 철학의 중요한 논쟁거리이며, 과학의 발전을 촉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통 속의 뇌’ 역설이다. ‘나는 몸에서 분리되어 인큐베이터 속에 잠겨 있는 뇌가 아닐까? 어떤 미친 과학자가 나에게 현실적인 체험과 독 같은 가상현실을 체험하도록 나에게 전기충격을 보내고 있는 것을, 나는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
미국의 과학저술가가 쓴 ‘패러독스의 세계’는 철학이나 과학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역설의 상황을 설명한 책이다. 책이 12장으로 나눠져 있다고 ‘인간 이성의 한계를 묻는 12가지 역설’이라는 부제를 달았지만 실은 책에 등장하는 역설이 12개뿐인 건 아니다. 각 장에는 ‘통 속의 뇌’처럼 한 가지 역설이 중심으로 등장하지만 그 주제와 관련된 다른 패러독스와 철학 과학이론, 소설과 영화 이야기가 그야말로 무수하게 등장한다. 고대철학자 제논의 논리나 데카르트와 흄의 철학이 소개되고 보르헤스의 소설이 거론된다. ‘매트릭스’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패러독스를 다룬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패러독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는 게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역설들이 크게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대립 축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과학과 상식은 영원히 불확실한 토대 위에 세워진 믿음의 구조물’이어서 ‘어떤 결론도 극도의 확실성을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이다. 철학개론서의 따분함에 신물이 나는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만한 책이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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