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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진용 김용 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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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진용 김용 金庸

입력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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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자 한국일보 32면에 실린 <‘영웅문’ 저자 김용 이번엔 중국통사 쓴다> 기사를 정리하다가 좀 고민이 됐다. 4월 22일자 이 난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 라는 칼럼에서 그 분의 속명을 ‘라칭어(Ratzinger)’라고 썼다가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라칭거’로 (틀리게!) 통일하기로 했는데 왜 딴 소리 하느냐”고 선배님한테 혼(?)이 난 바 있기 때문이다.

영어권 신문사 부장이었으면 그런 이상한 고민은 없었을 것이다. 그냥 ‘Jin Yong’이라고 쓰면 되니까. 대부분의 한국 신문에서 이 소설가를 ‘진융’이라고 잘못 쓰고 거기다 괄호 열고 한자(金庸)까지 같이 써 드린다. 문제는 이 기사를 읽는 한국인들은 옛날부터 ‘김용’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제 와서 진용이나 캄융, 또는 원발음과도 거리가 먼 진융이라고 하면 그 전설적인 작가임을 알 수 있을까?

우스꽝스러운 사례 또 하나. 2003년 4월 한국일보를 비롯해 거의 모든 신문에 ‘장궈룽’ 또는 ‘張國榮’이 죽었다고 났다. 그러나 정작 <영웅본색> <패왕별희> 의 ‘장국영’은 죽은 적이 없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리처드 기어에게 선물받은 이탈리아 옷 상표(Versace)를 보고 ‘버사스?’라고 했다가 ‘베르사체’라는 말을 듣고 무안해진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에서는 인식표를 뒤지던 미군 병사가 “찾았다. 라이언!”하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곧 ‘쫑코’를 먹는다. “그게 라이언이야? 리엔이지?” 프랑스 이름 Rienne을 영어 이름 Ryan으로 잘못 읽은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리 비웃을 일도 아니다.

고명하신 옥스퍼드대학의 고전학자들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리스토틀’이라 하고 플라톤을 ‘플레이토’라고 하지 않는가? 미켈란젤로는 지금 영어권에서 자신이 ‘마이클안젤로’로 개명돼 있음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귤이 강을 건너면 탱자도 되고 유자도 되고 하는 법이다.

우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를 현지인의 2배로 예우해 드린다. 그런데 영자 신문은 이름과 성을 바꿔 Junichiro Koizumi라고 쓴다. The United States(미국)도 프랑스로 가면 ‘레 제따쥐니(les Etats-Unis)’가 된다. 일본인들은 ‘마쿠도나루도’라고 쓰고도 그것이 McDonald를 말하는 줄 서로 잘 이해한다. 그럼 된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외래어 또는 외국어 표기를 원칙에 따라 통일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고 바보 같은 짓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다. 불가능한 이유는 한글에 없는 외국어 음운은 원리상 정확히 적을 수 없기 때문이고, 이처럼 어차피 완벽하기도 통일하기도 어려운 문제에 그렇게 많은 공을 들이는 것은 낭비이기 때문이다.

이런 ‘치밀한’ 외래어 표기법 때문에 “이범석 장군은 1920년 10월 20일 중국 지린(吉林)성 청산리 백운평에서 벌어진 ‘청산리 전투’에서”라는 희한한 문장까지 나온다.

왜 그토록 원 발음에 충실하게, 통일해서 적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일까?

차라리 그 시간에 한국어 표기법을 다듬고, 무수히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 학술용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말로 잘 번역해 체계적 사고를 돕고, 한국어와 한글을 아름답고 올바르게 가꾸려는 노력을 하자. 멍텅구리 같은 통일은 이제 제발 그만 합시다!

이광일 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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