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지음창비 발행ㆍ9,500원
뿌능숴(不能說)!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해야 하는 작가라는 존재의 아이러니에, 소설가 김연수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소설집에는 9개의 단편소설이 묶여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뭉뚱그려 말하자면, 하나의 사실 즉 ‘분명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든 운명이든 개인의 진실이든, 그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으며 다만 분명한 것처럼 표현되고 인식되는 것일 뿐임을 말하고 있다.
그 언명은 하지만, ‘모든 존재하는 것은 회색’이라던 한 서양 사상가의 말처럼 도저한 냉소와 불가지론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회의는 진짜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의 근거이자 출발점인 듯하다. 곧, 분명하지 않은 것들을 분명한 것처럼 인식하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유령작가’라고 말함으로써, ‘유령’이 아닌 듯 응고된 형태로 존재하는 밀랍 같은 실체를 녹이고 있다.
첫 작품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은 “농담이라고는 잘 못 할 뿐더러 남의 농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 남자가 우연히 전처를 만나 정처 없이 걸으며 나누는 ‘농담 같은’ 이야기이다. 거기에 개화기 지식인들의 ‘농담 같은’ 역사가 겹쳐지고, 남자는 자신의 파경이 그러했듯, 역사라는 것도 농담 같은 우연들의 소산일 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만을 두고 본다면 세상의 모든 일은 인과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그 사이의 행로는 때로 매우 우연적이고 사소한 것들로 채워지곤 한다.”
그 같은 자의식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병사로 참전했던 한 상이군인의 고백담 형식을 띤 ‘뿌능숴’에서 이런 문장으로 변주된다. “역사라는 건 책이나 기념비에 기록되는 게 아니야.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몸에 기록되는 거야. 그것만이 진짜야.” 그 진짜 역사는 하지만,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이며, “한결 같은 운명은 죽은 자의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절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화자는 말한다.
사(私)적 소통도 마찬가지다.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라는 작품에서 일본인 유학생인 ‘나’는 한국 여인 세희와 1년 가량 동거해온 사이다. 하지만 세희는 ‘나’의 본명도, 별명인 ‘네즈미’가 생쥐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도 모른다.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세희의 여동생은 따진다. “당신들은 서로 이해하는 척하지만, 서로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서로를 속이느라 삶을 허비하고 있어.” 그 말에 ‘나’는 속으로 반문한다. “과연 인간이라는 게 이해 받을 수 있는 존재일까?”
그 허망한 ‘분명한 것들’에 대한 인식은, 굳은 각질을 걷어내려는 집요함으로 나아간다. 변학도와 춘향, 변학도와 이몽룡의 이분법적 선악구조를 띤 ‘춘향전’을 뒤집는 ‘남원고사에 관한 세 개의 이야기와 한 개의 주석’이 그렇고, 서울 수복 이후 적 치하의 부역자 재판정에 선 ‘피고’의 자기변론을 통해 ‘드러난 진실’의 허망함을 고발하는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가 그렇다.
모든 존재와 가치는 소성(塑性)을 지니며, 진실이라는 것도 쉽게 변질ㆍ변형된다는 것은 그다지 새롭고 자극적인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집의 매력은, 어쩌면 ‘뻔한’ 것을 달리 그리고 낯설게 전하는 능란함에 있는 지 모른다. 영국 중국 미국을 넘나드는 작품의 무대와 등장하는 화자들의 다국적성은 작가가 처음부터 ‘무국적성(無國籍性) 글쓰기’를 염두에 둔 듯 싶기도 하다. 보편의 이야기를, 먼 과거의 낡은 시공간에 놓아두고 그 시대의 화법으로 말함으로써, 달리 말해 세월의 더께를 일부러 얹음으로써, 쉽사리 낡지 않을 소설을 쓰고자 한 듯도 싶다. 작가의 탄탄한 지적 밑천을 훔쳐보는 재미와 그 특유의 분석적 표현들을 곱씹어 보는 재미도 만만찮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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