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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인터넷 투표, 선거도입은 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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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인터넷 투표, 선거도입은 성급

입력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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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학계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중심으로 인터넷 투표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과 영국 호주 등 많은 서구 국가들이 이미 전국 규모의 선거에서 부분적으로 인터넷 투표 방식을 도입하였고 향후 이를 더욱 확산할 계획이다.

선진국의 이같은 추세와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그리고 정보화 강국으로의 자부심 등이 우리로 하여금 인터넷 투표 도입에 더욱 박차를 가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선관위원회 계획에 따르면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가 도입되고,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는 안방에서도 투표할 수 있는 인터넷 투표가 전격 실시된다.

인터넷 투표 도입의 필요성으로 가장 많이 제기되는 문제는 낮은 투표율이다. 투표율 저하는 대부분의 선진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우리도 매년 투표율이 조금씩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아직은 ‘대표성의 위기’를 우려할 만큼 낮은 투표율은 아니다. 한편 인터넷 투표를 도입한다고 하여도 투표율이 10~20%씩 상승할 것 같지는 않다.

영국의 경우 2003년 지방선거에서 키오스크, 인터넷, 휴대전화, 디지털 TV 등을 이용하는 전자투표 방식을 도입하였으나 투표율이 37%로 전년에 비해 5% 증가하는데 그쳤다.

또한 한국 선거연구회 설문조사를 보면 투표 기권자 가운데 약 40%가 선거에 관심이 없거나 지지하는 정당 혹은 후보가 없기 때문에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고 응답하고 있다. 정쟁과 비리, 게이트로 얼룩진 현실정치에 절망한 유권자들이 새로운 투표 방식이 도입되었다고 하여 투표장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 투표를 통해 투표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데 비해 인터넷 투표의 위험성으로 지적되는 보안과 비밀투표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특히 우리 현실에서 우려되는 점은 비밀투표 보장의 문제이다. 원거리 인터넷 투표의 경우 유권자는 선관위로부터 개인 식별번호와 비밀번호를 부여받아 가정이나 사무실 등 본인이 원하는 장소에서 투표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우선은 비밀투표를 보장하기 어렵다.

종이투표의 경우 기표소에 혼자 들어가 투표를 하게 되지만 인터넷 투표는 가족 혹은 친구들이 함께 모여 투표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경우 가족 혹은 친구들 간에 특정 후보에게 투표할 것을 강요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매표의 가능성이다. 인터넷 투표는 비밀번호와 개인 식별번호만 있으면 얼마든지 대리투표가 가능하다.

비록 원거리 인터넷투표를 이미 실시해 본 미국과 영국에서 이 같은 문제가 보고되지는 않았다고는 하나, 선거 시 금품제공 행태가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의 정치문화 수준을 생각해 볼 때 매표 가능성은 충분히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인터넷 투표 도입이 가져올 수 있는 또다른 우려는 선거권의 평등과 관련된 문제이다. 인터넷 투표를 도입함으로써 네티즌들은 기존 투표방식 이외에 또 다른 투표 기회를 추가로 갖는 혜택을 받게 된다. 이는 세대 간 그리고 계층간 정보불평등 현상이 뚜렷하게 존재하는 현실에서 일부 집단에게만 특혜를 주는 셈이다.

이처럼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인터넷 투표 방식을 공식선거에 도입하기보다는, 국민들이 일상정치에 참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터넷 투표를 이용하면 정당의 주요 의사결정과정에 당원들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며, 지방자치단체도 주요 정책을 결정하기 이전 단계에서 인터넷 투표를 통해 주민들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자를 선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 참여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윤성이 경상대 정치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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