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거 짐이 너무 많으니까 이건 빼버리지?” 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 벼농사를 짓는 오정면(70)_문달님(68)씨 부부는 매년 눈발이 날릴 때면 어김없이 배낭을 꾸린다. 햇볕에 말린 청국장 가루는 비상식량이요, 모기장, 티셔츠, 비상약들은 원주민들에게 건네줄 선물이다. 열여덟번째 꾸리는 배낭이지만 뺄 물건 넣을 물건 가리다 보니 이렇듯 즐거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에세이집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자’에서)
오씨 부부가 매년 석달 간 여행을 떠나는 곳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의 오지 마을이다. 원주민 마을을 돌면서 유기농법을 가르치고 마약퇴치 운동을 벌여온 지 18년째다. 1987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소수 민족의 비참한 생활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농사철만 끝나면 달려가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몸이 아픈 아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안타까워 하다가 95년 심장병을 앓는 캐서린(당시 11세)양을 국내로 데리고 와 수술시켜 줬다. 선행이 이어져 2002년에는 페르디난(당시 2세)을 데려와 구순구개열(언청이) 수술을 해줬고 2004년에는 움빙(당시 14세)군의 구순구개열 수술을 마쳤다. 지금까지 수술시킨 아이들이 7명, 수술비는 1억원을 훌쩍 넘는다. 적금과 예금을 해약해야 했지만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한신학교를 졸업한 오씨는 대학 때 만난 아내 문씨와 함께 고향 상주에 내려와 유기농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야학을 운영해 가르친 학생만도 300여 명이다. 스무 마지기 논에 농사를 지어 1년에 1,200만원 벌지만 아들 딸 6남매를 대학에 보내고도 빚져본 적 없다. “여자를 대학까지 보내느냐”는 동네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들었던 다섯 딸은 오씨가 아이들을 데려오면 100만원씩 목돈을 내놓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남들은 치매를 걱정할 나이에 오씨 부부는 원주민의 현지어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은 말레이어, 두순어, 이반족어, 중국어 등 7개 언어를 구사한다. “20대가 청춘이라면 우리는 70대 노춘(老春)이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부지런히 배우고 배풀어야제.” 밀림은 오씨 부부에게 제2의 고향이다. 원주민들도 두 사람을 ‘시가르바루(새 정신적 지도자)’와 ‘이이윤싱가(사랑의 어머니)’라 부르며 따른다.
“캐서린이 올해 몇 살이지? 요즘 알리스가 보고 싶네” 아들 딸이 안겨준 손자 손녀보다 수술받고 돌아간 오지 아이들을 더 챙긴다는 부부는 다음달 15일 한국에 올 위니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열세 살로 구순구개열 환자다. 오씨는 “오지일수록 임신 중 영양결핍이 잦아 이런 아이들이 많이 태어난다”며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지금까지 잘 수술 받았으니 이번에도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의 봉사활동은 최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자’(대산출판사 발행)라는 책으로 나왔다. 부부는 서문에서 “가진 것은 부족하지만 그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행복과 감사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라며 오히려 원주민에게 감사한다. 턱없이 부족한 수술비를 감수해준 병원 의사들에게, 부부의 여행길에 정성을 담은 봉투를 보내온 기부자들에게 감사한다.
부부의 평생 꿈은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한 심부름꾼일뿐”이라고 말하는 부부는 11월 19번째 여행을 떠난다.
김명수 기자 lece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