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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해남 - 달마산 미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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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해남 - 달마산 미황사

입력
2005.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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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34도 17분 38초. 한반도의 최남단 땅끝. 전남 해남은 육지의 끝을 품은 또 다른 극점이다.

혹시 한계에 서 본 적이 있는가 . 일상에 지치고 체념에 스러져 맥없이 떠밀려 온 벼랑. 끝은 낯설음이요 두려움이다. 하지만 막상 더는 갈 수 없는 그 곳에 서면 드디어 멈춰 있던 내 안의 엔진이 작동한다. 내면의 울림이 들리기 시작하고 맑은 사색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속절없이 낙하하던 공이 바닥에 이르러 튕겨 오르듯, 끝은 반동(反動)의 생명력을 불어 넣는 곳이다. 더는 갈 수 없음이 다시 시작할 눈을 뜨게 해 줘 이 뭍의 끝자락은 다시 뭍으로 향한 출발점이 된다.

절망을 털고 희망을 안고 가는 해남의 땅 또한 모든걸 감싸 안을 만큼 따뜻하고 아늑하다. 한반도의 끝에 삐죽 솟은 해남은 그 자체로 3면이 바다인 반도다. 호수 같은 바다와 보석 같은 섬들로 둘러싸이고 핏빛 황토의 들판이 출렁이는 넉넉한 땅이다.

산세의 수려함도 녹록지 않다. 백두대간의 성난 호흡은 지리산에서 정점을 찍은 뒤 땅끝으로 흘러 들어 숨을 고른다. 영암의 월출산을 관통한 그 흐름은 '해남의 영산(靈山)' 두륜산에서 자태를 뽐내고 다시 '해남의 금강(金剛)'이라 하는 달마산에 내려와 마지막 혼을 불사른다.

질박한 아름다움이 숨쉬는 해남, 생명의 싱그러움이 꿈틀대는 땅끝. 그대 혹시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가. 그럼 지금 해남으로 가시라. 그 임계점으로.

해남의 땅끝 마을이 육지의 최남단이라면 달마산의 미황사는 육지 끝의 절이다. 목포에서 고속 도로를 빠져나와 미황사로 향하는 길은 걸쭉한 남도의 풍경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시뻘건 황토 벌판이 넘실대고, 간척 사업에 막혀 호수가 된 바다는 소르르 해무를 피워 낸다.

두륜산의 자락은 땅끝으로 이어지다 달마산에서 수직 바위를 일렬로 뿜어냈다. 최고 높이 489m로 높지 않으나 해수면에서부터 솟아 오른 덕에 산세가 녹록치 않다. 칼처럼, 창처럼 솟구친 바위의 능선은 달마산 정상인 불선봉을 지나 도솔봉(421m)까지 약 8㎞에 거쳐 이어진 다음 땅끝에 솟은 사자봉에서 갈무리된다.

이 달마산을 병풍 삼아 서편 자락 볕 좋은 곳에 미황사가 자리 잡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절로 오르는 길에는 동백나무가 열지어 섰다. 지금은 다 지고도 남을 때인데 어쩌다 한 두 송이 여전히 붉게 꽃을 피우고 있다. 강인한 생명력이다.

미황사 대웅전 뜨락에 서니 거기가 바로 극락이다. 미끈하게 잘 생긴 대웅전은 긴 세월 동안 단청의 빛이 바래 맨 얼굴이다. 화장하지 않은 기둥과 지붕은 투명한 나뭇빛 그대로다. 독경 소리 울려 퍼지는 대웅전 너머로는 달마산 암봉이 마치 호위 군사마냥 늘어서서 사찰을 지키고 있다. 마냥 넋을 빼는 풍경이지만 경내는 내려오는 길에 다시 둘러 보기로 하고 먼저 산으로 올랐다.

적당한 경사의 산길은 험하지도 또 너무 지루하지도 않아 산행에 제격이다. 낙엽이 썩고 또 썩어 만든 흙이라 새까만 길이 푹신하다. 초록의 터널을 지나는 길 내 숨소리마저 싱그럽다.

한 30분 올랐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힐 무렵 달마산 바위 병풍이 바로 앞에서 막아섰다. 뒤돌아 보니 해남의 붉고 푸른 들판이 쫘악 펼쳐졌다. 눈부시도록 하얀 바위들은 햇볕을 마냥 빨아들이며 섰고 발아래 나무들은 푸른 옷으로 뒤덮였다.

조금만 더 바위를 타고 오르니 능선의 정점 문바위다. 건너편은 해남의 서편 바다가 지척이다. 굽이치는 땅무리와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옅은 해무 사이로 아련히 보이는 다도해의 풍경은 잔잔한 진동으로 마음을 들뜨게 한다. 공룡의 등짝처럼, 톱니처럼 늘어선 달마산 암봉의 능선도 옆에서 보니 그 흐름은 더욱 급하게 물결 쳤다.

미황사는 경을 싣고 가던 소가 누워 점지했다는 절집으로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된 천년 고찰. 한 때 도솔암 문수암 등 12암자를 거느렸던 큰 절이었다. 전란 등을 거치면서 절은 불탔다가 다시 지어지는 등 부침을 거듭했다. 1900년대 초 주지 혼허 스님이 중건을 위해 모금차 스님들의 공연단인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 등 섬을 다녔는데 그 때 조난을 당해 젊은 스님들이 몰살됐다고 한다. 군고단 준비로 진 빚 때문에 절은 쇠퇴했고 잊혀져 왔다.

퇴락했던 절이 지금의 단아한 모습으로 살아난 것은 89년 이곳에 온 주지 금강 스님과 현공 스님 덕분이다. 두 분이 ‘지게 스님’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손수 돌을 나르고 굴삭기를 운전해 대웅전과 응진전 외에 흔적만 남아있던 누각들을 복원해 냈다.

미황사는 2002년부터 템플 스테이를 실시하고 있다. 예불 참선 다도 등 산사에서의 전통 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다. 홈페이지(www.mihwangsa.com)와 전화 (061)533-3521로 미리 예약하면 된다.

해남=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또 돌아보면

해남까지 와서 땅끝을 보지 않고 갈 수는 없다. 엄청난 비경이 숨어 있어서가 아니다. 거기가 끝이라는 사실은 거의 절대 명령 같다.

■ 호수 같은 바다를 솔숲이 둘러싼 송호리 해수욕장을 지나면 땅끝마을 갈두리다. 사자봉 정상에는 횃불 모양의 땅끝 전망대가 불쑥 솟아 있다. 모양새는 볼품 없지만 전망 하나는 더할 나위 없다. 바로 앞의 흑일도와 저멀리 해무와 어우러진 노화도, 보길도 등 덕택에 다도해의 진수가 그대로 들어 온다. 그러나 이 전망대에 오르지 않아도 땅끝 구경은 할 수 있다. 전망대 아래인 땅끝 토말비까지 벼랑을 따라 걷기 좋은 산책로가 조성돼 있는 덕이다.

■ 달마산이 낮고 미황사가 작아서 성에 차지 않는다면 두륜산 대흥사를 둘러 볼 일이다. 두륜산은 703m의 해남의 영봉으로 8개의 높고 낮은 봉우리가 이어진 규모가 큰 산이다. 산행 코스는 험하지 않아 2~3시간이면 가련봉 정상에 닿을 수 있다. 대흥사는 미황사 등 말사 여러 곳을 거느린 신라때 지어진 천년 고찰이다.

절로 들어가는 숲 길이 아름답다.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을 모신 곳이다. 서산대사를 기리는 사당 표충사도 곁에 있다. 큰 절 답지 않은 아늑한 대웅전이 인상적이다. 대흥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20분만 오르면 일지암이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과 교분을 나눴던 초의선사가 우리나라 차 문화를 일으켜 세운 곳이다.

■ 대흥사에서 해남읍으로 가는 길에 고산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綠雨堂)이 있다. 효종이 수원에 사랑채를 지어 하사한 것을 훗날 뱃길로 이리 옮겨놓은 집이다. 녹우당은 뒷산의 비자 나무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우수수 봄비 내리는 것처럼 들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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