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에 노 타이(no tie) 열풍이 한창이란다. 일본 정부가 여름철 노 타이 간편복 근무를 결정한 데 이어 국회도 노 타이 차림 등원을 고려중이다. 운이라도 맞추듯 24일부터 일본 정부의 대변인나 다름없는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이 노 타이 셔츠 차림으로 언론 브리핑을 실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덤으로 받았다. 이웃 나라 노 타이 바람이 유행보다는 에너지 절약 홍보 차원의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치자. 그러나 남성적 권위의 표상이었던 넥타이의 시대가 지고 있음을 웅변하기에는 족하다. 신사의 상징물을 기껏 여름 더위에 헌 행주처럼 내치다니!
노 타이 패션이 여름 남성복의 키 워드로 떠오르면서 노 타이용 셔츠에 대한 관심이 급등하고 있다. 허전해진 V존을 남성 액세서리의 ‘지존’이었던 넥타이 대신 셔츠로 치장하려는 감각파들의 욕구가 높아졌다. 지난해 메트로 섹슈얼족의 대표 의상으로 엄청난 호응을 얻었던 꽃무늬 셔츠를 비롯, 다양한 무늬와 재단을 내세운 노타이용 셔츠들이 다투어 출시되는 추세.
제일모직 남성 캐릭터 브랜드 엠비오 디자인실 장형태 실장은 “주 5일 근무로 여가 문화가 발달하고 의복이 캐주얼화되면서 최소한 여름철은 노 타이가 대세로 굳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장 실장은 “노 타이용 셔츠가 전체 셔츠 물량의 80%에 이를 만큼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며 “캐릭터 브랜드 뿐 아니라 갤럭시, 지방시, 마에스트로 등 보수적인 남성 정장도 캐주얼화를 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또 코오롱 지오투 디자인실 변선애 실장은 “이번 시즌 상품으로 내놓은 보석 단추 셔츠의 경우, 디자인실에서조차 회의적이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가히 폭발적 인기였다”면서 “남자들이 다양한 패션에 얼마나 목말라 했는가를 엿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올해 노타이용으로 출시된 셔츠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드레스 셔츠에 보석 모양의 단추를 달든지 칼라나 앞섶에 자수를 놓는 경우가 있고, 일부러 색깔 있는 굵은 실로 바늘땀을 내서 장식성을 강조한 것 등이다. 일부 캐릭터 브랜드에서는 소매에 작은 프릴을 달거나 칼라에 가느다란 레이스를 덧댄 제품도 내놓았다. 이들 드레스 셔츠는 타이 없이도 멋스러운 V존을 유지할 수 있고 정장 느낌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 타이를 매도 잘 어울려 40대 중후반까지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다.
드레스 셔츠보다는 캐주얼하면서 과감한 무늬를 살린 셔츠들은 좀 더 젊고 개성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20~30대 남성들에게 인기 있다. 코오롱패션 지오투가 내놓은 V컷 셔츠는 원단을 세로로 재단하는 통상적 방식 대신 바이어스(사선)로 재단, V자 무늬가 몸판을 감싸는 형태. 녹색이나 보라 등 대담한 색상을 채용해 더 극적인 효과를 살렸다. 엠비오는 조직감과 디테일을 살린 흰색 셔츠들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올해 남성 셔츠 색상 중 가장 두드러지는 흰색은 셔츠 칼라와 소매에 간격이 넓은 바늘 땀을 넣어 장식하거나 사선 무늬의 조직감을 살리는 등 세련되고 경쾌한 이미지를 추구한다. 이 밖에 잔잔한 꽃무늬나 여러가지 색실을 이용해 자수를 놓은 것도 많다.
넥타이 디자인의 선구자 마라 백작 부인은 넥타이를 일컬어 “남자의 자존심”이라 했다. 그러나 넥타이로 상징되는 권위와 격식의 시대는 갔다. 노 타이가 웅변하는 발상의 전환, 혹은 자유로운 사고가 더 평가받는 시대다. 적어도 패션에 관한 한 남자의 자존심도 규격에 맞춘 타이 한 장이 아닌 세련된 패션 감각이나 연출 능력에 맞춰지고 있다. 노 타이 차림은 ‘정장에는 셔츠 - 넥타이’라는 뻔한 공식을 답습하는 것보다 훨씬 고도의 패션 감각이 요구된다는 사실이 그 같은 사정을 웅변한다.
엠비오 장형태 실장은 “예전엔 부인이나 애인이 같이 와서 남성복을 사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엔 혼자 와서 자신의 취향대로 구입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며. 패션에 대한 남성의 높은 관심을 상기시켰다. 장 실장은 “최근의 노타이 패션 붐은 한 편으로는 넥타이 없이도 세련된 연출이 충분히 가능할 만큼 우리나라 남성들의 패션 감도가 높아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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