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출신의 저항시인 베이다오(北島), 그는 자신의 시가 저항시로, 혁명의 선동시로 읽히고, 인용되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1989년 천안문사태 당시 그는 현장에 없었지만, 그의 시 ‘대답 1’은 광장을 메아리 치며 젊은 이들의 피를 충동질했다. “…너에게 고하노니 세계여,/ 나는- 믿지- 않아!/ 너의 발 아래 1천 명의 도전자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렇다면 나를 천한 번째 도전자로 삼아다오.” 그는 그 사실이 어처구니없다고 했다. 시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시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이기도 하고, ‘아니다’이기도 하다. 시는 언어에 불과한 것이다. 언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시는 인간의 영혼을 심도 있게 건드리기 때문에 인간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 시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 노래한다. 그래서 시는 본질적으로 어두운 구석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 어두움을 찾는 과정이 시에 담겨있다. 따라서 시는 어둠 속에서 인간이 꾸는 상상의 꿈이다. 바로 그 꿈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본인의 시가 천안문 사태 당시 낭송된 것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우선, 수많은 젊은이들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 정작 시를 쓴 당사자는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당시 나의 시가 젊은이들의 정서를 움직여 도취시킨 나머지 그들을 더 위험한 상황으로 내닫게 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다. 또 시란 그런 데(선동용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는 개인의 차원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담은 것이다. 다만 나는 혁명의 기운이 충만했던 시대를 살았고, 그래서 그런 정신이 불가피하게 제 초기 작품에 반영됐을 것이다. 나는 하지만 시인으로서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왔다.”
-자신의 시 가운데 어떤 시를 좋아하는가, 또 지향하는 시는 어떤 것인가.
“아직은 내가 좋아하는 시를 쓰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할 시는 바로 다음에 쓸 시가 될 것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모두 웃음)
그는 기자회견 서두에, 천안문 사태 이후 유럽과 미국을 오간 긴 방랑의 체험에 근거해 ‘근대성’에 대한 견해를 길게 피력했다. “최근 10년간 미국에 살면서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미국인들의 마음 깊이 내재된 고립감, 혹은 소외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봐도, 그들의 정신은 폐쇄적입니다. 문학을 읽어도 현대문학, 미국 작품에 천착합니다. 그것은 사고의 고립입니다. 이 같은 폐쇄적인 마음가짐은 근대화의 문제와 닿아있고, 근대화의 세뇌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탄스러운 것은 정작 자신은 폐쇄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세뇌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말 끝에 그는 “중국과 한국 역시 미국을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쏟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도 했다
-최근의 중국 정치현실에 대한 입장은.
“최근 상황은 무척 복잡해 보인다.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념 통제는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은 지금 과도기이다. 향후 몇 년이 지나야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나아가게 될 것 같다. 물론 경제성장은 기쁜 일이다. 국민들의 삶이 지난 20, 30년 전과 비교할 때 크게 개선됐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같은 경제적 부(富)의 대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소득 격차, 빈부 격차가 심화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단절의 아픔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일본의 우경화 경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중국과 한국 국민들은 그 점을 매우 깊이 우려하고 있다. 전범 침략행위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고 희석하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지탄 받아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일본 내 지식인과 언론의 목소리가 약화한 것이 무척 안타깝다. 나는 EU 창설이 인류 번영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에도 그 같은 국가간 연대가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일본이 걸림돌이다. 일본 정부는 과거에 대해 진솔한 태도로 용서를 받음으로써 그 걸림돌을 제거해야만 한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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