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부터 술을 마시고 난 밤이면 다리에서 느껴지는 끊임없는 감각들 때문에 잠을 깼어요. 처음엔 그저 술 때문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1년 전부터 점점 더 자주 이런 이상한 느낌을 갖게 됐어요. 새벽 4~5시면 장딴지 근육이나 발목이 저리고 옥죄는 듯해 잠을 깹니다. 저도 모르게 밤새 다리를 움직일 수 밖에 없었고, 아내도 이런 저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입니다.”(30대 남자 K씨)
일종의 수면장애인 ‘하지불안증후군’(Restless Legs Syndrome)은 인구의 10~15%가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지만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질환이다. 이 때문에 의사를 찾아가도 자신의 증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장통, 우울증, 고혈압, 불면증, 불안장애, 관절염 등으로 진단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근질근질한 느낌’ ‘스멀스멀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 ‘저림’ ‘옥죔’ ‘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 ‘쿡쿡 쑤심’ ‘가려움’ ‘타는 듯한 느낌’ ‘그슬리는 느낌’ ‘잡아 끄는 느낌’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 ‘고통스러움’ ….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들은 이처럼 다양하게 자신의 증상을 표현한다. 이런 증상은 주로 다리에 나타나나 발과 허벅지, 몸통, 팔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잠 잘 때 혹은 앉아있거나 누워있을 때 등 주로 휴식 중에 나타나며 저녁이나 밤시간에 더욱 심해지는 게 특징이다. 다리를 움직여주면 증상이 완화되지만 일시적이며 지속적으로 다리를 움직여 주어야 한다.
이 때문에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들은 숙면을 취할 수 없다. 잠들기도 힘들고, 잠자다 자주 깨고, 낮 시간엔 수면장애로 피곤하다. 또 환자들은 영화관람이나 장거리 자동차 여행, 항공기 탑승 등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일에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충분히 휴식하지 못하니, 집중력 상실, 활력부족, 우울감등으로 일상생활이 힘들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하지불안증후군의 근본 원인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 속 도파민 전달체계의 이상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도파민이란 신체운동을 통제하는 신경세포 간에 신호를 전달하는 화학물질. 도파민 이상은 유전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으며, 하지불안증 환자의 절반 이상이 가족에게서 유전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임신, 당뇨병, 신장병, 알코올중독, 심한 다이어트, 파킨슨병, 철분부족 등으로 생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하지불안증후군의 증세가 유전성인지, 아니면 특정질병에 따른 2차적 증상인지 우선 감별 진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환자의 3분의 2는 여성이며, 나이가 들면서 유병률이 올라가지만 20대 이전에 발병하기도 한다.
유사한 증상을 동반하는 다른 질병들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다리에 이상한 느낌,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다리를 움직이려는 강한 충동 ▦누워있거나 앉아있을 때 증상 발생 ▦걷거나 스트레칭을 하면 증상 완화 ▦저녁이나 밤시간에 증상악화 등 4개 핵심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불행하게도 치료제도 많지 않은 편이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치료제로 허가받은 약은 도파민 효능제의 하나인‘로피니롤제제’에 불과하다. 이 약은 원래 파킨슨병 치료제인데, 중등 혹은 중증 하지불안 증후군 치료에 적응증이 추가된 것이다. 국내에선 아직 하지불안증후군으로 적응증이 확대되지는 않은 상태. 이외에도 각종 통증완화제(코데인), 신경안정제 등이 치료제로 처방 되고 있다.
생활습관 개선도 하지불안증후군의 증세를 완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낮잠 특히 초저녁에 잠자는 일 ▦저녁 늦게 간식 먹는 일 ▦오후 늦게 카페인 섭취 ▦음주 등을 피하라고 권한다. 매일 밤 같은 시간에 잠들고,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일도 중요하다. 수면시 조명을 어둡게 하고, 잠자기 전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도 편안한 잠을 자는데 도움이 된다.
송영주 의학전문 대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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