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禮記)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은 서로 문답하며, 선생님 생전에 듣지 못한 것이 있으면 벗에게 들어서라도 알고자 했다. 어느날 유자가 증자에게 물었다.
“벼슬을 잃으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해 선생님께 들었는가?” 증자는 공자에게 직접 들은 말이 있어 대답할 수 있었다. “벼슬을 잃으면 빨리 가난해지고 싶고, 죽어서는 빨리 썩고 싶다”는 말씀이었다.
벗이 몰랐던 선생님의 귀한 말씀을 가르쳐 주었는데 뜻밖의 반응이 돌아온다. 유자가 “이것은 선생님 같은 군자가 한 말이 아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증자는 “선생님한테 직접 들은 말이고 자유(子遊)도 함께 들었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유자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무슨 까닭이 있어서 말씀한 것이지 일반론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라고 응대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상한 증자가 자유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런데 자유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유자가 말하는 것이 선생님과 비슷하구나! 선생님께서 송나라에 계실 때 환퇴라는 자가 돌로 된 덧널을 만드는데 3년이 돼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이와 같이 사치하느니 죽어서 속히 썩게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하셨다.
노나라에서 벼슬하다 쫓겨난 남궁경숙이란 자는 기회를 얻어 돌아오게 되자 임금을 만날 때마다 보물을 싣고 왔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이렇게 뇌물을 쓰느니 벼슬을 잃고는 빨리 가난해지는 것이 낫다’하셨다.”
공자는 호화롭게 관을 만들어 시신을 오래 보전하고자 하는 자를 보고 ‘죽으면 빨리 썩고 싶다’한 것이고, 벼슬할 때 축재한 돈으로 뇌물로 쓰는 것을 보고 ‘벼슬을 잃으면 빨리 가난해지고 싶다’한 것이다.
증자가 들은 말은 일반론이 아니라 한심한 작태를 보고 개탄스러워 말한 것이었다. 유자는 사람의 상정(常情)을 벗어난 말을 공자 같은 군자가 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에 증자의 말을 듣자마자 사연이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예기에서 이 이야기를 소개한 까닭은 일반론을 특수한 상황에 적용해서 이해하는 것과, 반대로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말을 일반화하는 두 가지 오류를 경계하고자 기록된 것이라고 본다.
필설(筆舌)로 다 할 수 없다는 표현이 있다. 대면한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이나 글도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참으로 일리 있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한 치 걸러 듣고 보는 것이야 오죽하겠는가. 유자 같은 제자를 둔 공자님이 부럽고, 유자 같은 제자가 되지 못한 내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박성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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