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일본의 역사학자와 교사, 시민운동가들이 3년이 넘는 긴 토론 끝에 완성한 최초의 동아시아 공동 역사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한겨레신문사 발행)가 25일 출간됐다.
이 책은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졌던 동북아시아 근현대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해 과거사 반성의 기틀을 마련하고, 세 나라 청소년들에게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사관을 심어주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발언 등이 파문을 낳고 있어 의미가 자못 크다.
공동교재 발간 작업은 2002년 3월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린 ‘역사인식과 동아시아 평화포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일본 후소샤(扶桑社) 역사교과서의 검정 통과 이후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모인 한ㆍ중ㆍ일 학자 100여 명은 이 회의에서 자연스럽게 공동 역사부교재 개발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두 달 뒤 ‘한중일 공동교재 개발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그 해 8월 서울에서 첫 회의가 열려 부교재 개발 목적과 대상, 주제, 시기 등을 정했다. 연말에 도쿄에 다시 모인 세 나라 학자들은 각 국 역사교과서 내용을 분석하고 공동 교재의 대항목을 정했다. 작업은 의외로 순조로운 듯이 보였지만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소항목 작업에서 고비를 맞았다.
2003년 2월 소항목안을 두고 토론을 벌였지만 합의가 쉽지 않았다. 9, 11월로 이어지는 거의 1년의 토론 끝에 목차와 편집 방향에 합의할 수 있었다.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는 원고와 사진자료 검토 기간이었다.
‘한중일 역사교재개발 특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이 역사적인 교재 발간 사업에 참여한 학자와 교사, 시민운동가는 50여 명을 헤아린다.
한국에서는 서중석(성균관대) 김성보 왕현종(이상 연세대) 김정인(춘천교대) 김한종(한국교원대) 교수와 신주백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 문주영(신도봉중) 박중현(중경고) 이인석(경기여교) 교사, 양미강 아시와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 등이, 중국에서는 부핑(步平) 사회과학원 연구원, 쑤즈량(蘇智良) 상하이사범대 교수, 다이스솽(戴世雙) 베이징대 연구원, 왕즈신(王智新) 일본 미야자키대 교수 등이다.
일본에서는 마쓰모토 다케노리(松本武祝ㆍ도쿄대) 오비나타 스미오(大日方純夫ㆍ와세다대) 이타가키 류타(板垣龍太ㆍ도시샤대) 교수, 다나카 유키요시(田中行義) 시바타 다케시(柴田健) 등 현직 교사들이 참여했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16세기 중반 무렵부터 최근까지를 모두 6개 장으로 나누어 기술했다. 구미 열강의 개항 압력이 노골화할 때까지를 ‘개항 이전의 삼국’으로, 각국의 문호개방과 청ㆍ일, 러ㆍ일 전쟁의 소용돌이 휘몰아치는 1900년대 전후의 시기를 ‘개항과 근대화’라는 항목으로 묶었다.
이어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과 한ㆍ중 양국의 저항’ ‘침략 전쟁과 민중의 피해’ ‘제2차 대전 후의 동아시아’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하여’ 순으로 일본의 침략전쟁과 전후 배상ㆍ보상문제, 국교 정상화과정까지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청소년들이 동북아 근현대사의 실체가 무엇인지, 세 나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역사를 살아왔는지 있는 그대로 친절하게 소개하는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전체 문장을 ‘~습니다’ 체로 통일했다.
200장에 가까운 사진 자료와 40여 가지 도표ㆍ그래프 등 시각 자료들이 풍부하다. 특히 각 장의 하부 항목인 20개 절 끝마다 실어놓은 칼럼 ‘역사 들여다보기’는 ‘삼국의 지도’ ‘삼국의 수도’ 등과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신채호, 가네코 후미코, 리다자오 등 인물 중심으로 엮어 재미를 더한다. 장 끝마다 ‘생각해 봅시다’를 실은 것이나, 마지막 장에서 역사교과서와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따로 다룬 것은 아픈 과거사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서술이 해당 시기의 세 나라 상황을 병렬하는 형식이어서 “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구조적으로 연관시켜 파악한다는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신주백 연구원은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재 작업의 목표가 동아시아사를 정리하는 한 편의 역사서를 쓰겠다는 것이 아니었고, 세 나라 학자들의 협력 해수가 4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26일 오전 11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는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이름으로 나온 이 책의 출간기념회를 연다. 일본도 이날 출간기념회를 갖지만, 중국(사회과학문헌출판사)에서는 출간이 당초 계획보다 늦어져 6월3일에 기념회가 열릴 계획이다.
■ 韓·中·日 공동 역사교재 쟁점
한ㆍ중ㆍ일 공동 역사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 편찬에 참여한 신주백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세 나라가 역사교과서의 틀을 이미 가지고 있는 점이 공동 교재를 만드는 데 적지 않은 걸림돌이었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학자들은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을 일관된 정책으로 파악한 데 비해, 일본 학자들은 청일전쟁 이후를 기점으로 보는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도 있었다.
메이지 이후 일본의 동아시아 정책이 동아시아 관계를 새로 구성했다고 보는 일본 학자들은 일본의 동아시아 정책을 축으로 삼국관계를 파악하는 교재구성안을 냈지만 한국과 중국의 반대에 부딪쳐 현재와 같은 병렬형 서술이 됐다.
교과서관이 특히 달랐던 것은 중국이었다. 일본 학자들이 일본제국주의 국가는 침략자이지만, 일본 민중은 한편으로 피해자라는 점을 함께 서술해야 한다고 하자, 중국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했고, 한국이 일본의 견해에 동감을 표시하자 섭섭하달 정도였다고 한다.
신 연구원은 “중국의 교과서는 일본의 잔학 행위에 대한 서술이 적나라할 정도로 구체적인데다 전쟁을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설명했다. 3ㆍ1운동이 중국의 5ㆍ4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도 중국의 반대로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학자들은 현재 중국 교과서에는 언급하지 않는 국민당의 항일투쟁 대목을 수용했다. 편찬위원회는 이번 작업을 통해 “각국의 역사연구나 역사교육 및 교과서의 차이로 개개 사건을 보는 관점이나 방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잡지는 않았지만 후속 작업도 “충분한 대화와 토론, 연대를 통해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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