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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알 권리와 그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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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알 권리와 그 한계

입력
200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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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이목을 끄는 비리 사건이 터져 나오면 신문과 방송은 수사과정을 앞다투어 소상하게 보도한다. 언론 종사자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직업이요, 언론의 임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보도를 접하는 뉴스 소비자는 마치 자신이 수사기관이나 되는 듯 열을 올리며, 수사가 종결될 즈음이면 ‘사건의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믿게 된다. 여러 차례 있었던 특검의 경우가 그러하였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선 자금 수사가 그랬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몇몇 사건들도 그러하다.

언론이 이런 보도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물론 검찰, 경찰, 특검 등 수사기관이 그 직무를 행하는 기회에 알게 된 내용을 그저 누설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기자들을 불러놓고 만천하에 공표하는 일을 거침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종사자들이야 법을 몰라서 그러려니 하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사는 물론 소추와 공판까지를 담당하는 검찰이 아직 수사 단계에 있을 뿐인 사건에 대하여 기자들에게 누구의 무슨 혐의가 밝혀졌느니, 누가 무슨 증언을 했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법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자라면 검사가 수사 단계에서 ‘밝혀내었다’는 내용은 아직은 ‘사실’이 아니라 일방의 ‘주장’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 것이다. 사법적 판단은 상대방의 주장까지를 예단 없이 들어본 연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audi alteram partem)은 정의와 형평의 기본적인 요청이다.

재판을 앞둔 검찰이 자신의 일방적 주장을 언론에 먼저 공개하고 기정사실화해 버리는 것은 법원에 대한 체계적이고 적나라한 압박이며, 형사재판절차를 무의미한 요식행위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그 사건이 법원에 올 때쯤이면 온 국민이 피고인의 유죄를 당연시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법관이 만일 무죄 판결이라도 내려야 한다면 엄청난 심리적 부담을 감수하여야 한다.

피의사실을 공판 전에 공표하는 것이 범죄행위 임을 모를 리 없는 검찰이 상습적으로 수사결과를 언론에 공개해 온 것은 바로 이점을 노린 것이라고 본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수사 결과를 재판 전에 공개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는 있다. 수사가 진행되는 시점은 사건이 아직 생생한 ‘뉴스가치’를 가지는 기간이다. 이때에 기자회견을 자청함으로써 검찰은 뉴스의 초점에 자리할 수 있고,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하여 검찰은 주요한 ‘권력기관’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지분을 재확인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반공을 국시로 하던 시절 심심찮게 터져 나왔던 ‘XX 간첩단 사건’의 경우 언제나 그 수사 결과는 재판 전에 기자회견의 형태로 보도 되었는데, 그것은 당시 사정기관의 생생한 권력을 공표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피의사실공표가 관행적으로 자행되고 언론이 이 행위를 방조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출입처’라는 이름 하에 고질적으로 유지되는 뉴스 진원지와 뉴스 보도자와의 공생 또는 기생관계가 그것이다. 수사기관이 자청하는 기자회견은 언론사로 하여금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뉴스거리를 손쉽고 값싸게 확보하여 배포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언론사와 수사기관은 국민의 알권리를 근거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려한다. 그러나 피의사실공표가 처벌되어야 한다는 말은 피의사실이 영구히 보도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보도의 시점을 재판 후로 미루라는 말이다.

하지만 정보의 시의성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언론사와 만인의 이목이 집중된 순간 뉴스의 초점에 화려하게 등극하기를 원하는 검찰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결국 뉴스의 상업적 가치를 놓칠 수 없다는 언론사의 계산속과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적시에 각인 시키고자 하는 소추자의 권력욕이 절묘하게 결합한 다음 국민의 알권리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제시되는 것이다.

재판이 열릴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조급함, 재판이 열리기 전에 우선 여론몰이로 기선을 제압하려는 비겁함까지 옹호하기 위하여 마구잡이로 동원되어도 될 만큼 알권리가 무가치하거나 무책임한 것은 아니다.

김기창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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