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줄기세포 연구 지지자들은 이제 머리를 맞대고 줄기세포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다음달 11~12일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미 유전학정책연구소(GPI) 회의 소개 문건에 실린 이 어구는 미국 과학자들의 초조함을 드러낸다.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가 지난해에 이어 줄기세포 연구의 벽을 또 하나 허물었다고 발표하면서, 미국 뿐 아니라 각국 생명 과학자들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기술적 발전과 윤리적 제재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현재 미국 과학자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1998년 인간줄기세포 배양에 세계 최초로 성공하고도 연방 정부의 자금 지원 중단으로 ‘목마른 상태’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당시 위스콘신 주립대와 존스 홉킨스대가 생명공학기업인 제론사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냈던 줄기세포는 임신 5~9주에 사망한 태아로부터 생식세포를 꺼내 배양한 것이다. 황 교수팀이 사용한 체세포 복제방식과는 차이가 있으나, 이는 줄기세포의 가치와 의미를 알리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2001년 매사추세츠 주 고급세포기술연구소(ACT) 연구원이었던 호세 시벨리 교수는 체세포 복제 방식으로 인간배아복제에 성공했다. 줄기세포 단계까지 분화하지는 못했으나 이는 체세포 복제를 통한 최초의 인간배아복제로 기록됐다. 그는 최근 황 교수 연구 성과 발표 후 “한국정부는 황 교수를 위해 연구실을 지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반면 미국 정부는 이라크와 유가만 생각하지 질병 치료에는 관심이 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2002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로버트 랭거 박사는 인간 줄기세포를 혈관 조직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줄기세포를 특정 세포로 분화케 해 질병치료에 쓰도록 한, 줄기세포 필수 기술 중 하나다.
미국의 인간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는 현재 연방 자금 지원의 중단으로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하는 상태다. 그러나 미 국립보건연구원(NIH)이 인정한 인간배아줄기세포 78주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는 정부 자금이 계속 투입되고 있고, 작년까지 NIH도 전국의 연구자들에게 지금까지 확립된 줄기세포로부터 분화한 약 400주 이상의 줄기세포를 제공했다. 아울러 캘리포니아 주는 지난해 11월 주민투표를 통해 주 차원에서 매년 3억 달러를 지원키로 했고 민간 자금에 의한 줄기세포 연구는 계속 진행 중인 상황이다.
난자의 핵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체세포를 주입하는 체세포 복제 방식은 면역 거부반응을 없애 치료에 가장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 방법으로 거론된다. 영국은 비록 동물의 사례이긴 하지만 이 방법을 성공시킨 첫 나라다. 1997년 로슬린 연구소 이안 윌무트 박사가 탄생시킨 복제양 돌리는 체세포 복제에 의해 태어난 첫 포유류다. 자신감을 얻은 영국은 2001년 ‘인간수정ㆍ배아 연구법’을 고쳐 그 동안 금지됐던 ‘치료 목적의 인간복제배아 제작’을 허락했다.
지난해 8월에는 영국 뉴캐슬대 미오드락 스토코비치 박사 연구팀이 인간 복제배아 연구 허가를 승인해줄 것을 영국 인간수정 및 발생학 당국(HFEA)에 신청, 세계 최초로 ‘정식 허가’를 얻어냈다. 황 교수팀이 우리 정부로부터 연구 허가를 얻어낸 것(올해 1월)보다 약 5개월 빠른 것이다. 스토코비치 박사는 당시 “돌리 복제 및 황 교수의 줄기세포 배양에 쓰인 것과 같은 체세포 복제 방식을 사용해 수십 개의 인간배아를 복제, 당뇨병 치료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2월 황 교수팀의 연구 발표 후 위기를 느낀 일본은 같은 해 6월 임상 응용이 아닌 기초 연구에 한정한 인간배아복제를 허용했다. 아울러 같은 해 7월에는 경제산업성이 “인간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를 상업화 할 수 있는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연구비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복제 배아를 줄기세포나 신경세포로 분화해 만든 새로운 약의 효과 시험’, ‘복제 배아에 특정한 유전자를 삽입 혹은 제거해 질병의 발생 원리 규명’ 등 두 연구 분야에 대해 일본 정부는 올해만 10억 엔(약 1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2004년 3월 교토대 연구팀은 줄기세포로 혈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에 쓰인 배아 줄기세포는 2년 전 호주에서 제공받은 것이었다. 이처럼 일본은 복제배아생산 자체보다는 향후 임상에 쓰일 활용 연구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과학계 관계자는 “황 교수팀의 놀랄만한 연구 성과가 2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발표되면서 미국 등 세계 각국 연구팀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앞으로 연구는 복제배아 생산 자체보다는 인간배아복제 줄기세포를 통한 질병 치료 등 상용화 쪽에 초점에 맞춰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도움말=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흥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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