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서야 아버님을 만났습니다. 아니, 아버님이 생겼습니다.”
반 백년의 세월을 이기고 대(代)를 넘겨, 지구 반 바퀴의 먼 길을 돌아 두 사람이 벅차게 만났다. 서울국제문학포럼 참가차 방한한 헝가리 출신 소설가 티보 머레이(81)씨와 설희관(58ㆍ전 한국일보 총무국장) 시인. 지난 22일 저녁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 동안 서로 말 문을 열지 못했다.
생면부지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시선은 그 자리에 없던 한 사람의 뚜렷한 영상을 더듬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비운의 월북시인 고(故) 설정식(1912~1953)씨, 설 시인의 선친(先親)이고, 머레이씨의 영혼의 친구이다.
고인은 미국 유학까지 마친 해방정국의 엘리트 지식인이자 시인이었다. 미 군정청에서 잠깐 일했으나 이승만 정권의 부패와 미군정의 횡포에 환멸을 느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월북했으나, 53년 북한 정권에 의해 ‘미제의 간첩’으로 조작돼 처형당했다. 월북 당시 그에게는 아내와 세 아들과 딸이 있었다. 막내인 설 시인은 당시 겨우 만 세살이었다.
51~52년 헝가리 공산당 기관지 종군기자로 북한에 특파됐던 머레이씨는 북한군 통역관으로 근무하던 ‘설 소좌’(고인)를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우리는 한 눈에 의기투합해 근 1년 동안 술로 밤을 지새며 문학과 시와 역사와 삶을 이야기했죠.”
심장병을 앓던 고인은 헝가리 정부가 북한에 지어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경험과 헝가리인 의사 등과의 우정을 노래한 장편 서사시 ‘우정의 서사시’를 썼고, 머레이 씨는 이 시의 영역(英譯)본을 고국으로 보내 책(52년 12월)을 내기도 했다.
53년 여름 다시 평양으로 파견된 머레이씨는 이 영혼의 친구를 어두컴컴한 정치범 재판정에서 보게 된다. 그는 62년 ‘사상계’에 기고한 글에서, “어떤 명분으로도 자기 민족이 흘리는 피를, 그 전쟁의 참경을 납득하지 못하던 그 여린 양심이 그의 죄과라면 죄과”라며 “그 재판은 토착 공산당원의 숙청이었다”고 적었다.
편모 슬하의 설 시인과 형제들은 ‘아버지 부재’의 정신적ㆍ경제적 고통과 연좌제라는 서슬 퍼런 정치적 족쇄에 묶여 살아야 했으리라. 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시집 ‘햇살무리’(책 만드는 집 발행)에 그 시절의 고통과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고생만 하시다 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토로하기도 했다.
설 시인은 “머레이씨는 선친과의 우정과 가슴 아픈 이별 등 추억을 떠올리며 자주 말을 멈춘 채 자주 상념에 잠겼어요. 50년 넘게 간직해 온 선친 관련 자료만도 서류봉투로 두 개나 되더군요.” 또 그의 화가인 그의 부인은 사진으로 그린 선친의 인물화를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국제포럼의 공식행사가 모두 끝난 뒤 28일 조촐한 저녁 자리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해서, 들어도 들어도 다 못 들을 선친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이제 제 아버님이 되어 달라고 어리광부리듯 조르고 조를 참입니다.”
환갑을 눈앞에 둔 시인은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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