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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野 소장파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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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野 소장파의 착각

입력
2005.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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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국회에선 잘 나갔던 한나라당 소장파가 최근 박근혜 대표도 아닌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와 싸운 것은 시시했다. 4ㆍ30 재보선 압승 후 상종가를 치고 있는 박 대표를 직접 때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말라 죽기는 싫은 초조감이 당 밖 아마추어들의 설익은 비난조차 참지 못할 만큼 그들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든 듯 하다.

실제로 지금 한나라당 소장파의 처지는 보잘 것 없다. 이제 그들을 과거처럼 당 개혁의 선봉이나 당의 미래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반(反) 박근혜 진영의 일파(一派)’정도다.

그들의 추락은 언행을 관통하는 원칙과 희생이 없는, 편의(便宜)적 정치의 결과다.

지난해 총선 직후부터 박 대표 체제의 강력한 울타리를 자임했던 그들은 올 3월 당 혁신 논의의 와중에 박 대표의 퇴진을 주장했다. “박 대표가 너무 보수화했다”는 이유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단견(短見)에 대해서도 해명을 해야 하는데 일언반구도 없었다.

이런 행태는 처음이 아니다. 두 번의 대선패배 후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극도의 위기감 속에 치러진 2003년 대표경선에서 몇몇 유명 소장파는 당내 인사 중 5ㆍ6공 경력이 가장 화려한 최병렬 후보를 밀어 당선시켰다.

그러면서 “최 후보가 젊은 이들과 말이 잘 통해서”라는, 참으로 어이 없는 이유를 둘러댔다. 그리고 8개월 뒤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 지지도가 급전직하하자 “최 대표에게 실망했다”며 최병렬 퇴진운동에 앞장섰다.

그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은 그때그때 다른 여론이고 상황이다. 상대가 패착을 두거나 약점을 보여 인기가 주춤하면 바로 비난하고, 몰아내려 한다. 그리고 박 대표가 위상을 회복한 지금, 퇴진 요구는 사라졌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보수주의는 자체의 이론과 철학이 없다. 그들은 변화의 속도만 문제 삼을 뿐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나라당 내 완고한 보수파를 포함한 한국 보수세력의 현 주소를 연상시키는 명언이지만, 보수의 개혁을 외친 소장파라고 해서 이 보다 낫지 않다.

명분을 위해 정치적 희생을 감수하고, 때론 여론의 흐름을 역류할 수 있는 강기(剛氣)가 없다면 지도자로 클 수 없다. 김대중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이 그런 고비를 넘겼고, 3당 합당을 거부한 뒤 민주당 후보로서 부산에서 거푸 낙선한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엔 한나라당 소장파는 유약해보인다.

정교한 개혁의 청사진도, 몸을 던지는 지사적 열정도 없이 평론가와 같은 입 바른 소리 몇 마디로 개인 이미지만 높이려는 행태로는 더 이상 당과 보수세력의 개혁 이니셔티브를 쥘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직 착각에 빠져 있다. 남경필 의원은 박사모와 싸운 의원들을 “당의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낼 주역”이라며 “그들이 없으면 당의 변화는 과거로의 회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초선 의원들이 성장하고 있고, 당 밖에도 대안이 꿈틀대고 있다.

원희룡 의원은 최근 공저(共著)한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는 책에서 “남을 공격해서 반사이득을 얻을 게 아니라 자기 성찰적 반성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모색을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한나라당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기회주의자에겐 기회가 없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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