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원이 극단적 대립 속에서 타협의 묘수를 찾았다. 공화ㆍ민주 양당의 중도파 의원들이 당 지도부의 뜻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 대화를 모색한 결과였다.
법관 인준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의사진행방해) 권한을 제한하려는 미 공화당의 상원 규칙 개정 표결 시도를 하루 앞둔 23일 공화ㆍ민주 양당의 중도파 의원 14명이 상원의 파국을 막기 위한 극적인 타협안을 끌어냈다.
이로써 미 상원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지명한 법관 인준을 둘러싸고 진행돼온 양당의 극한적 대결을 해소할 실마리를 찾았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잠정적 휴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 향후 법관 인준 과정에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합의에서 민주당 소속 의원 7명은 지금까지 필리버스터로 표결 처리를 막아온 프리실라 오원 등 법관 피지명자 3명에 대한 인준안을 처리하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나머지 피지명자 2명은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아 민주당은 이들의 인준을 계속 거부할 수 있다.
민주당은 또 앞으로 부시 대통령이 지명하는 법관 인준 대상자에 대해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는 필리버스터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반면 공화당의 중도파 의원 7명은 필리버스터 규칙을 개정하려는 어떤 움직임에도 반대하기로 해 소수당인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권리를 보장하는 데 합의했다.
이들이 합의대로 행동할 경우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나 공화당의 의사 규칙 개정 모두가 불가능해 이날 합의는 당 지도부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합의 발표 후 빌 프리스트 상원 공화당 대표는 “좋은 소식이나 실망스러운 소식들이 있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볼멘 소리를 냈으나,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는 “견제와 균형이 보호됐다”며 더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프리스트 대표는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소수의 독재라고 비난하면서 법관 인준에 필리버스터를 금지하는 데 필요한 의석 수를 현행 60석에서 51석으로 낮추도록 상원 규칙을 개정하는 이른바 ‘핵무기 옵션(Nuclear Option)’의 표결 강행 의사를 밝혀왔다.
이에 대해 리드 대표는 소수당의 견제 기능을 마비시키는 행위라고 비난하며 개정안이 처리될 경우 모든 상임위에서 필리버스터를 벌이겠다고 맞서왔다.
이날 협상을 주도한 공화당의 존 매케인 의원은 이날 합의는 “신뢰, 존중, 소수자 권익 보호를 위한 상호 희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며 “누가 승자고 패자냐고 묻는다면 의회가 승자고, 미국이 승자라고 답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로버트 버드 의원도 “내 발언, 논쟁, 이의제기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미국을 위해 이 타협안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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