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직설적 언행으로 논쟁의 중심에 선 정치인이 있다. 얼마 전 턱걸이로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진입한 유시민 의원이다. 그는 당 지도부 선거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청년실업은 각자가 알아서 할 문제”라는 식으로 말했다가 문제가 된 바 있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것으로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4ㆍ30 재보궐 선거 참패로 생겨난 여소야대를 헤쳐 나갈 전략과 관련해 “민주노동당과 연합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어 차라리 한나라당과 합의하는 게 낫다”는 그의 발언이다.
처음 이 말을 듣는 순간 탄핵 당시 탄핵 반대 쪽에 섰고 국가보안법 폐지 등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법안에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며 유 의원이 강조하는 깨끗한 정치와 정당 민주화의 선두 주자인 민주노동당보다는 ‘차떼기당’이자 노 대통령을 탄핵했고 개혁 법안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한나라당과 손을 잡겠다니 유 의원이 과연 제 정신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유 의원의 주장을 잘 읽어보자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무릎을 쳐야 했다. “한나라당과 공조할 때는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되지만 민주노동당과 공조할 때는 왼쪽으로 많이 가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든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과 일부 냉전세력들은 심심하면 노무현 정부를 좌파 정권이라고 비판하지만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개혁적 보수 내지 자유주의 세력으로 이념적 거리에서 진보세력인 민주노동당보다는 냉전적 보수세력인 한나라당에 훨씬 가깝다.
즉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자유주의적이냐, 냉전적이냐는 차이는 있지만 크게 보자면 모두 보수 정당이다. 사실 탄핵과 같은 극한 대립이 있기는 했지만 이라크 파병으로부터 집시법 개악, 반민중적인 시장 논리의 신자유주의 정책 등 주요 정책에서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은 공조해 왔다.
그러나 이 문제를 좀더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민주노동당 간에 존재하는 대립과 연대의 두 측면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얼마 전 이 난에서 ‘두 개의 개혁, 두 개의 전선’이라는 칼럼(2월 22일자)을 통해 지적한 두 개의 개혁, 즉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둘러싼 ‘민주 개혁’과 비정규직 확대 등 ‘신자유주의 개혁’이다.
구체적으로 민주 개혁에 대해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동지이고 한나라당이 대립한다면,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해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동지이고 민주노동당이 대립한다.
따라서 민주노동당과 연대하느니 한나라당과 합의하겠다는 유 의원의 발언은 열린우리당이 민주 개혁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구하겠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노무현 정부가 올 들어 실용주의라는 이름 아래 추구하고 있는 노선이며 이 점에서도 유 의원의 발언은 정확한 것이다.
미시간 대학의 미식 축구 선수 출신으로 두뇌가 그리 명석하지 못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던 포드 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면서 대통령이 되자 한 코미디언이 포드 대통령은 워낙 ‘돌머리’라 대학 미식 축구사상 유일하게 헬멧을 쓰지 않고 경기를 한 선수였다고 풍자했다.
이에 백악관이 불평을 하자 이 코미디언은 자신의 풍자를 명예훼손이나 국가원수 모독죄가 아니라 국가 기밀 누설죄로 처벌하라고 응수한 바 있다.
이 풍자처럼 유 의원의 발언은 참여정부를 자칭하는 노무현 정부의 진짜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솔직히 실토한 국가 기밀 내지 천기 누설죄에 해당된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 부끄럽기 짝이 없을 수도 있는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을 솔직히 고백한 유 의원의 용기에는 뜨거운 박수를 쳐 주고 싶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