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는 조선국왕이 보낸 조공사절?” 3년간 함께 연구를 한 뒤에도 한국과 일본 학자들의 역사인식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2002년 5월 발족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30일 공동연구의 성과를 집대성한 최종보고서를 인터넷 등 일반에 공개하고 활동을 마감한다. 한국일보가 24일 입수한 보고서 요약문에 따르면 한일관계사에 대한 시각차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최종보고서는 19개 대주제에 대한 한일 학자의 논문 1편씩과 보론 등 40여개 논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우선 조선통신사에 대해 한국측은 선린우호적 성격과 문화전파자로서의 측면을 강조한 반면, 일본 학자들은 무로마치막부(室町幕府 ㆍ1338~1573)가 이들을 조공사절로 간주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통신사는 1428년을 시작으로 조선왕조가 일본 아시카가(足利) 정권에 파견한 공식 외교사절이며, 우리쪽으로도 일본국왕사가 파견됐다.
일제 식민지 지배하의 저항운동에 대해서는 한국측이 “일제의 폭압적인 동화정책에 대항해 국내외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이라고 기술한 대해, 일본측은 “근대적 관료제의 이식과 국제화의 진전에 대해 반발한 저항 민족주의”라고 주장해 반개혁운동으로 폄하했다.
또 일본의 한국 강점 과정에서 체결된 조약들에 대해 한국측은 국제법 및 절차 등에 비추어 불법적이고 부당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일본측은 “우월한 힘을 배경으로 조약을 맺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근대 국제법이 안고 있는 모순이지 불법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양국 학자들은 일본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해 삼국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과 한반도 주변에서 활동한 일종의 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왜구’, ‘임진왜란’ 등의 주제에 대해서도 첨예하게 대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결과를 놓고 과거사문제 해결을 위해 발족한 공동위원회가 자국 중심의 역사에 집착하고 이를 알리는 데만 치중한 아니냐는 지적을 낳고 있다. 그러나 위원회측은“공동연구를 통해 이 같은 역사 인식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측 관계자는 “앞으로 발족할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연구결과의 교과서 반영을 보장 받아 역사문제 해결이라는 위원회의 존재 이유를 만족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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