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한들에게 납치됐던 50대 건설회사 사장 부인이 44시간만인 24일 새벽 현금 1억9,600만원을 주고 풀려났다. 30세 전후로 보이는 2명의 범인은 돈을 건네 받은 뒤 주변에 잠복해 있던 경찰 80여명을 따돌리고 유유히 달아났다.
24일 오전 1시14분께 대전 유성구 노은동 월드컵경기장 뒤편 왕가봉 약수터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 2명이 22일 새벽 납치했던 K주택 사장 부인 김모(59)씨의 작은 아들(27)로부터 1만원권 현금 1억9,600만원이 든 검은색 가방 2개를 건네 받고 김씨를 풀어준 뒤 사라졌다.
범인들은 이날 오전 0시37분께 김씨의 작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노은동 한 도로변으로 돈을 가지고 어머니의 벤츠 컨버터블 승용차를 타고 나올 것을 요구, 벤츠 승용차가 나타나자 이 차에 올라탄 뒤 함께 왕가봉 약수터로 갔다.
이곳에서 돈가방을 건네받은 범인들은 아들과 어머니를 차에서 내리게 한 뒤 벤츠 승용차로 산을 내려와 노은동 농수산물시장 주차장에 차를 버리고 달아났다. 범인들은 주차장에 100만원권 돈다발 1개를 떨어뜨렸다.
앞서 경찰은 김씨의 다른 가족들과 함께 차량 6~7대에 나눠 타고 작은 아들이 운전한 벤츠 승용차를 100여㎙ 뒤에서 따라 갔으나 범인들이 중간에 만나는 장소를 변경하고, 아들도 어머니의 안전을 위해 경찰을 따돌리는 바람에 벤츠 승용차를 놓쳤다. 경찰은 범인들의 위치추적을 위해 돈가방에 휴대전화를 숨겨놓았지만 작동되지 않는 등 검거 작전에 큰 허점을 드러냈다.
10여분 동안 주변에서 허둥대던 경찰은 아들로부터 “어머니를 찾아 만났다”는 전화를 받고 뒤늦게 범인 추적에 나섰으나 범인들은 돈가방을 챙겨 이미 사라진 뒤였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이 피해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요구했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를 막으려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며 “범인들이 수 차례 접선장소를 바꿔 경찰 배치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범인들이 납치한 김씨의 눈을 포장용 테이프로 가렸고, 아들도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해 범인들의 인상착의 등에 대한 정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벤츠 승용차에서 김씨가 납치 당시 범인들의 손가락을 깨물어 생긴 것으로 보이는 혈흔을 발견했다.
경찰은 범인들이 작은 아들과의 통화에서 “너를 납치하면 5억인데 너를 죽일 것 같아 어머니를 납치했다”고 말했고, 가족들의 차량번호를 모두 알고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면식범의 소행인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김씨는 22일 새벽 5시께 친구들과 대전 중구 용두동의 한 찜질방에 갔다 혼자 나와 벤츠 승용차를 타려다 범인들에게 손발이 묶인 채 다른 차량으로 납치됐다. 범인들은 이후 가족에게 10여 차례 전화를 걸어 현금 4억원을 요구했다.
대전=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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