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본색을 드러내 망신을 사고 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씩씩하게 강경론을 쏟아내던 그는 23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회담을 가지면서 ‘찬미(讚美)론자’로 돌변했다.
그는 당초 아프간 주둔미군에 대한 보다 많은 통제권과, 관타나모 미군기지에 수감된 아프간 포로 수백 명에 대한 관할권 등을 요구했다. ‘꼭두각시’로 불리던 그가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자 맹방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는 말까지 나왔다.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서 발생한 코란 모독사건과 아프간 수감자에 대한 인권침해 보도는 그의 명분을 강화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회담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카르자이 대통령은 오히려 미국을 변호하는 데 더 시간을 할애했다. 수용소 인권침해에 대해 그는 “그런 일은 어느 곳에서든 일어난다”고 말했다.
뉴스위크의 코란모독 보도로 불거진 아프간 반미시위에 대해선 “불안을 야기하기 위한 정치 행위”라고 비난하고 미국 입장을 옹호했다. BBC는 “두 정상이 서로를 필요로는 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슬람권 지도자가 이처럼 따뜻한 말로 미국을 칭찬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비꼬았다.
그럼에도 카르자이는 양보를 전혀 얻어내지 못했다. 양해각서는 미군의 장기주둔과 주요 군사시설의 지속적인 사용권을 보장하고, 주둔 미군의 작전권도 미국측에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