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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 碑文변조”/ 김병기 전북대 교수 주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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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 碑文변조”/ 김병기 전북대 교수 주장 논란

입력
2005.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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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학자들이 임나일본부설의 중요한 근거로 삼는 광개토대왕비 신묘년 기사 일부가 분명히 변조된 것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 후반 왜가 한반도 남부에 진출해 백제와 신라, 가야를 지배했으며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었다는 주장으로 일부 일본 역사교과서는 정설로 기술하고 있다.

서예학을 전공한 김병기(51) 전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최근 도서출판 학고재에서 낸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글씨체로 밝혀낸 광개토대왕비의 진실’에서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쳐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일본이 해석하는 광개토대왕비문의 ‘渡海破’가 실은 ‘入貢于’

의 변조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신묘년 기사를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백제와 신라에 조공하기 시작했으므로 고구려는 왜도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4월 고대사학회 정기발표회에서 같은 주장을 펴 1차 논란이 됐었다.

고대 일본의 한반도 남부 경영을 둘러싼 한일 논쟁의 핵심에 있는 문제의 신묘년 기사는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은 확인 불가능). 김 교수는 1970년대 초 재일동포 사학자 이진희씨가 처음 주장해 대단한 파문을 일으켰던 ‘渡海破’가 서예학적인 안목으로 분석했을 때 틀림없이 조작된 글자라는 것이다.

그는 1900년을 전후한 시기 일본이 다량으로 만든 석회본(비석 표면에 석회를 발라 면을 고르게 한 뒤 뜬 탁본) 중 하나로 추정되는 동아대학교 소장본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광개토대왕비 글자체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획이 거의 직선으로 된 것인데, 이 탁본 신묘년 기사의 ‘渡’자 마지막 두획은 오늘날 흔히 쓰는 해서체에서처럼 중간 부분이 아래쪽으로 상당히 굽어 있는 파도 모양이다.

국내 학계에서도 변조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海’자의 경우도 광개토대왕비 서체는 모든 자형이 기본적으로 정사각형 혹은 세로가 약간 긴 직사각형인데 유독 신묘년 기사만 ‘母’ 부분의 세로 획이 모두 왼쪽 방향으로 기울었다.

신묘년 기사의 ‘破’자도 ‘石’의 두 번째 획이 직선 획을 사용하는 광개토대왕비 서체에 어긋나는 해서체이고, ‘石’자와 ‘皮’자의 높이가 비문의 다른 ‘破’자와 다르다. 김 교수는 서체 분석으로 볼 때 ‘이 작은 차이의 의미는 매우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渡海破’의 원형을 신묘년 기사 중 ‘속민’과 ‘신민’이라는 언뜻 보기에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로 쓴 용어에 착안해서 찾아나간다.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와 같은 민족이면서 예로부터 조공을 해온 나라이기 때문에 속민이라는 전용 명사로 나타냈다.

고구려의 입장에서는 혈족 관계로 보나 조공 관계로 보나 복속의 정도가 강한 속민인 백제나 신라를 복속의 정도가 낮은 신민이라는 일반 명사로 나타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는 ‘백제나 신라를 이미 속민이라는 칭호로 불렀으니 다시 신민일 수는 없다’며 광개토대왕비에서 유일하게 신묘년 기사에만 등장하는 ‘신민은 왜를 가리키는 말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맥락에 따라 그는 ‘渡海破’는 ‘入貢于’에서 변조됐을 가능성이 크고, 그 과정에서 변조탁본의 대표격인 사코 카게노부의 쌍구가묵본(종이를 대고 글자모양을 그린 뒤 여백에 검은 붓칠을 하는 탁본)에서처럼 ‘渡海破’의 줄이 심하게 틀어지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국내 학계“근거 미약, 문법적으로도 안 맞아”

국내 고구려사 연구자들은 김병기 전북대 교수의 광개토대왕비 신묘년 기사 해석에 대해 대체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10종류의 원석 탁본에서 신묘년 기사의 변조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이미 확인됐으며, 설사 변조됐더라도 원 글자를 ‘入貢于’로 추정할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고구려연구회장인 서영수(사진) 단국대 교수는 “비문 전체의 내용과 여러 사료에 근거해 당시의 역사적인 정황을 파악한 상태에서 비문 해석에 접근해야지, 글자 한 자 한 자에 의혹을 제기하고 그것을 자기 논리에 맞추어서 풀어 가서는 안 된다”며 “김 교수는 과거에 재일사학자 이진희씨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일본이 백제와 신라에 조공을 바쳤는지는 분명치 않다”며 “김 교수의 말대로 왜가 고구려의 신민이 되었다고 신묘년 기사를 풀이하려면 한문 문법으로 따져 ‘以爲臣民’ 앞에 고구려를 뜻하는 주어가 와야 맞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과 중국학자들은 90%가 글자 변조가 없다고 믿고 있으며, 국내 학자 중에서도 40% 정도는 이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며 “변조 가능성을 앞세워 탁본 내용을 파헤칠 것이 아니라 원석 탁본으로 알려진 여러 종의 탁본의 서체를 비교하는 과학적이고 기초적인 자료 축적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고대사학회 발표회에서 김 교수의 발표에 토론자로 참석한 박경철 강남대 교수는 “변조된 글자를 ‘入貢于’로 추정할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며 “김 교수의 변조설 주장에 당시 여러 의문점을 제기했으나 분명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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