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 봐도 전보에서 허영호가 흑▲로 우변 패를 따낸 대신 백에게 △들을 얻어맞아서 좌측을 틀어 막힌 것은 상당히 밑지는 장사였다. 국후 홍성지는 이 장면에서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고 말했다. 흑은 결국 우변 백 한 점을 선수로 끊어 잡기는 했지만 문제는 126이 놓이고 보니 중앙 흑대마 전체가 엷어졌다는 것.
마음 같아서는 좌하귀에 한 수 더 두어서 몽땅 집으로 만들고 싶지만 백A로 쌍립 서서 공격해 온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127, 129로 ‘대마에 가일수’했지만 백에게 좌하귀 삼삼 칩입을 당해서는 흑의 패색이 짙다.
형세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허영호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134 때 135로 뛰어 들어가서 백돌을 다 잡으려고 한 것은 너무 심했다. 152까지 흑진 속에서 활개치고 살아 버려서는 사실상 바둑이 끝났다. 지금이라도 흑은 냉정을 되찾아서 참고도 1로 두어서 백을 최소한으로 살도록 한 다음에 좌상귀를 적극 공략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다.
물론 실전에서도 흑이 좌상귀에서 수를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미 형세 판단이 끝난 홍성지는 흑을 선선히 살려 주는 대신 중앙을 모두 집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래서는 잘 해야 반면 승부. 아무리 둘러보아도 흑이 이기는 길은 없다. 그래도 허영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승부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180수 이하 줄임. 289수 끝, 백 4집반 승. 홍성지가 유력한 우승 후보 중에 하나였던 허영호를 제치고 제5기 오스람배 본선 첫 승리의 영광을 안았다. /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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