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서울 광화문은 언제부터인가 시민의 힘을 과시하는 장이 되었다.
5월 7일 대입 내신 반영 시위나 14일의 두발 규제 철폐 요구 시위나 또 이번 주로 기획 중이라는 학생 인권 시위로 연 3주째 행사가 진행된다니 학생들 자신의 문제를 본인들이 스스로 해결해 보겠다고 나선 것이 처음엔 ‘오죽했으면’이라는 절실함이 느껴지면서 참신해 보였지만 매주 토요일 오후로 계속되는 모습은 순수 자체로만 보이지 않고 저의를 의심케 된다.
현장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광화문에 나가 본 학부모로서의 느낌은 진정하고 순수한 학생들의 힘이 아니라 후에 일어날 불이익(사진촬영, 징계 등)을 두려워하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떳떳하지 않은 모습과 그들의 집회를 염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학생의 몇 배에 달하는 교육 관계자들, 취재거리를 찾아다니는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취재 열기뿐이었다.
5년 전 두발 자유화 외침을 이끈 선배들의 선동에 일방적인 자기주장만 외쳐대는 것은 불신의 골만 깊게 하는 듯했다. 예상보다 적게 모인 인원에 당황한 주최 측은 “전철역에서 학생의 접근을 막는다”는 낭설을 퍼뜨리며 다음 집회를 계획하고, 시위를 염려하는 관계자들은 조직의 배후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확산을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의 요구가 조직적 모임으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관심을 얻게 되었고 어른들은 당황하여 서둘러 대책을 발표함으로써 사태를 봉합해 보려 했지만 뿌리 깊은 불신은 그들을 안심시키지 못했다. 이젠 더 이상 이대론 안 된다.
잘못된 입시정책으로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도 모자라 사소한 문제로 인권을 침해받는다고 느끼는 아이들의 요구를 무시해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그들의 요구에 귀 기울여 적극 수용하지 않을 때 아이들은 자꾸 거리로 뛰쳐나오고픈 유혹을 느낄 것이다.
아직도 두발 자유화인가? 이런 문제를 아직도 논하고 있다는 것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20~30년 전에 우리가 겪었던 참담한 경험을 아직도 아이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학부모들이 더 엄격한 규정을 원한다’며 학부모를 핑계로 학교의 책임과 노력을 회피하지 말라.
아이들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큰 사회 문제가 될까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도와 줘야 한다. 학생 대표를 제대로 뽑고 교사, 학생, 학부모 대표가 모여 앉아 그들의 합의 사항을 만들어내게 하라. 그리고 타협점을 찾았으면 그대로 시행하라.
어렵게 만든 내용을 어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또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지 말고 그대로 두고 좀 지켜봐 주면서 기다리자.
어른들 뜻대로 손대고 간섭할 때 아이들은 실망하고 불만만 생길 것이다.
도대체 언제 우리는 아이들에게 민주시민 교육을 시킬 것인가? 이젠 우리 사회도 꽤 다양하고 여유 있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의 염색머리에 대한 거부감도, 남자들의 긴 머리에도 익숙해지지 않았나? 설마 남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빨강머리, 묶은 머리를 요구하겠는가? 지금보다는 좀 길고 자연스러운 머리를 원하고 아마 이 선에서 규정은 정해질 것이다.
개성 있는 머리를 하고도 공부에 지장이 없고 이것이 이들에게 해방구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을 갖고 아이들에게 기회를 줘 보자. 염려하며 막으려고 애쓸 시간이 있으면 아이들과 좀 더 대화하여 그들과의 접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데 쓰자.
다만 이 모든 노력은 꼭 학교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들의 공간은 학교이기 때문이다. 절대 광화문은 안 된다. 우리의 광화문은 월드컵이나 시민축제 같은 행복하고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때만 모든 시민이 함께 쓰기로 하자.
이경자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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