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들이 우량 중소기업 고객을 ‘포섭’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 가계와 대기업 고객들에 대한 영업 확대가 한계에 봉착하면서 우량 중소기업 고객들이 ‘은행대전’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수성자’의 입장인 기업은행. 기업은행은 최근 우정사업본부와의 제휴를 통해 우체국 예금 1조원을 연 3.6%의 저금리에 도입, 우수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에 연 5%의 낮은 금리로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해 금융권 최대 히트상품 중 하나인 네트워크론(대기업 납품계약서만 있으면 자금을 미리 대출해주는 제도) 규모도 연말까지 2조원대로 늘리기로 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과의 공동 채용설명회, 우수 중소기업인을 위한 명예의 전당 설립 등 ‘중소기업 주치의’라는 이미지 구축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20일부터 영업점장이 본부 승인 없이 전결처리할 수 있는 기업 신용대출 한도(신용등급 B2 이하 기업 경우)를 5,000만~3억원에서 1억~7억원까지 대폭 확대하는 등 공격적인 기업고객 공략에 나섰다. 국민은행도 영업점장에게 0.23~0.94%포인트까지 중소기업 금리를 할인해 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우리은행은 공단지역 융자비율을 상향 조정하고 시설자금대출 융자기간을 7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다.
은행장들도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19일 2박3일 일정으로 거래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12명과 함께 일본 산업시찰을 다녀왔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최근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CEO커뮤니티 합동모임’을 가졌으며 황영기 우리은행장도 전국의 중소기업 CEO 66명을 초청해 애로사항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종열 하나은행장과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수시로 지방 출장길에 올라 전국의 거래 중소기업 CEO들을 직접 챙기고 있고, 최동수 조흥은행장은 거래 중소기업 창립기념식에 직접 참석하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구애’ 경쟁의 가장 큰 원인은 가계 및 대기업 고객들에 대한 전통적인 영업 경쟁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가계 대출의 경우 이미 주택담보대출 등에 대한 지나친 우대 금리 경쟁으로 수익성 악화 등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는데다가 금융감독당국의 제동에 직면한 상태다. 기업 체질 개선과 전반적인 투자 위축, 이익 증대 등으로 인해 대기업은 아예 은행 돈을 쓰려 않으려는 추세가 뚜렷하다. 실제 30대 대기업의 경우 과거 200%를 넘나들던 부채비율이 지난해말 현재 78%로 급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은행권이 조금이라도 영업망을 더 확대할 수 있는 대상은 우량 중소기업밖에 없다”며 “외국계 은행들의 본격 진출 이전에 최대한 점유율을 올려놓아야 한다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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