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천황제 부활’을 외치며 할복했던, 유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 있다면 그 대척점에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70)씨가 있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작가는 문자의 황홀경에서 노니는 초월자이자, 내면으로 끊임없이 침잠하는 은둔자일뿐 아니라, 시대의 덧남에 같이 아파하는 참여자여야 한다”는 믿음을 굳게 지켜왔다. 소설 ‘사육’(1958)부터 ‘만원년의 풋볼’(1994)에 이르는 작품으로 이 믿음을 설파했고, 반전 운동과 김지하 시인 구명 노력 등을 통해 육화했다. 그것은 다시는 일본이 제국주의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한 지식인의 자각이자 불의한 사회를 향해 절규하는 양심의 목소리였다.
그가 24~26일 열리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1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10년 전 이와 비슷한 강연에 참석했을 때 제 말을 끊고 비판하던 중년 신사분을 아주머니 세분이 우산으로 찌르며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데 좀 들어보자’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말이 서툰 제가 ‘우산이 참 좋네요’ 했더니 주셨어요. 지금도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가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그건 단순한 우산이 아니다. 일본과 한국이 언젠가는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야 한다는 당위성과 그 가능성에 대한 증표다. 그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3ㆍ1절 경축사와 한일관계에 대한 담화문을 번역문을 받아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일본의 지성인이라면 진정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양국관계의 발전에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은 영원히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에 조금이나마 부응하고자 이번에 왔습니다.”
조국에서는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2004년부터 작은 정치 운동을 시작했어요. 평론가 가토 슈이치, 철학자 쓰루미 ??스케씨 등이 참여하는 ‘9조의 모임’입니다. 일본의 재무장 금지를 명시하고 있는 평화헌법 9조를 지키려는 모임이지요.” ‘9조의 모임’은 지난 반년간 강연회를 열어 2만5,000명 청중을 동원했고 1,000여 개의 작은 모임을 결성하는 성과도 이뤄냈다.
“일본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고, 아시아 여러 나라와 새롭고 평화로운 관계를 건설하겠다는 헌법의 정신을 버리는 것은 제 50년 인생을, 40년 문학생활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헌법 개정을 저지할 수 있는 희망은 30% 밖에 안 된다”고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가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다.
헌법개정운동과 더불어 그는 지금 쓰고있는 3부작 ‘안녕 나의 책들이여!’를 통해 황혼으로 치닫는 생에 방점을 찍으려 한다. “스물 두 살 때부터 50년 가량 소설을 써왔는데 이제 그 마지막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소설의 동기는 1935년 생 동갑내기 친구로 2년 전 세상을 떠난 문화인류학자이자 문학 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가 제공했다. “그가 죽기 1주일 전에 보낸 논문에 ‘작가는 지금까지와 다른 마지막 일을 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의 말처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어 그저 떠안고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는 모순들, 그걸 표현해보려 해요.”
그에게 삶은 가도가도 끝없는 모순이다. “젊을 때는 나이가 들면 관대해져서 모든 것이 용서되지 않을 까 했는데, 막상 70세가 되고 보니 모순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11년 전부터 이미 일본에서는 보수우익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압도적이었다. 이와 싸우기 위해 그에게 부여된 시간은 점점 소멸해 간다. 그가 “무력감과 실망, 그리고 공포감이라 할만한 무언가가 ‘후기작품’의 기조를 결정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러나 노 작가는 여전히 꿈꾼다. 그는 ‘숲에는 저마다 자기의 나무가 있어서 아이 때 그 나무 앞에 서면 70이 된 미래의 자신이 나타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고향 마을의 전설로 그 열망을 비유했다. “이제 내가 숲의 노인이 돼 그 아이를 만난다면 ‘나는 소설가가 됐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내 얘기를 많은 이들이 들어줬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똑바로 서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면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하신 어릴 적 선생님의 말을 듣고 민주주의자가 된 나처럼 ‘너도 민주주의자가 되라’라고 말할 겁니다.”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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