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일이다. 세계 제일이라고 자부하던 일본 바둑을 꺾고 우리 바둑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불세출의 기사에게, 한국 바둑이 이토록 발전한 이유를 누가 물었더니, 우리 정부가 관심을 갖지 않은 덕분이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1980년대부터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시장숭배라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우리에게 큰 깨우침을 하나 준다. 정부를 과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2차 대전 후 폴 새뮤엘슨을 대표로 하는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정부는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할 뿐 아니라 공평무사하여 불황과 실업, 빈부 격차, 공해 등 무슨 문제든지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비단 미국만이 아니다. 2차 대전 이후 복지국가를 만든 서유럽 사람들도 대부분 새뮤엘슨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런 정부는 책에만 있을 뿐 현실에는 없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신과 같은 힘과 마음을 가진 정부라는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운영하는 정부라는 거대한 조직이다. 이 조직은 거대한 예산과 방대한 인력, 그리고 법이 부여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이 막강한 국가 권한을 행사하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결코 전지전능하지도, 공평무사하지도 않다. 이들도 보통사람과 똑 같이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고, 사리사욕을 벗어나지 못하는 매우 부족한 인간이다. 구속되는 수많은 정치인과 공무원들처럼 이들 중에는 국민 평균보다도 윤리의식이 더 낮은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여 사태가 더 나빠지는 현상, 즉 국가의 실패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국가의 권한이 클수록,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수준이 낮을수록 국가의 실패가 더 심하게 발생한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를 맹신하지 말아야 하며, 불필요한 정부의 힘을 줄여야 한다.
우리나라 관치경제는 국가의 실패가 나타나는 대표적 예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대의 유물인 관치경제는 정치권력자들과 그 수하인 공무원들에 의하여 완전히 장악되어 운영되는 경제를 말한다.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그리고 현 노무현 정부가 모두 관치경제를 청산하겠다고 공언하여 왔다. 올바른 방향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입으로는 관치경제를 청산하겠다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정부의 규모를 확대하고 정부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범위를 경제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까지로 확대시키고 있다. 관치경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를 관치국가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위원회 등 정부 기관과 공무원 수를 늘리고 각종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현 정부는 과거 정부들보다 정부의 힘을 더 과신하고 국민들을 정부가 지도하고 감독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과거 박정희와 전두환 정부의 전통을 잇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버리고 각 부문의 민간에 자율권을 주고 민간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도출해 내는 것이 정부가 주로 할 일일 것이다.
현 정부 하에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대표적 부분이 교육이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 모든 정부는 입시지옥을 없애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며 나름대로 교육개혁을 시도하였다. 이로 인해 입시제도는 끊임없이 바뀌었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큰 고통을 겪었고, 공교육의 황폐화는 계속되어 왔다.
지금까지 수십 년의 경험은 우리나라 교육을 정부가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국민들은 실험대상이 아니다. 각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하면 대학별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생들을 선발할 것이고, 세월이 지나면 어떤 선발방법이 가장 좋은지 판별될 것이다.
교육부는 관치교육의 집착을 버리고 대학에 자율권을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세상에 관치국가와 관치교육이 아닌 나라가 없겠지만 우리나라는 더욱 심해져 가는 것 같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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