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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심판자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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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심판자들이 너무 많다

입력
2005.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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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중순 기자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UNC)의 객원연구원으로 있을 때 익숙하지 않은 광경을 보았다. UNC가 있는 채플힐 시내 곳곳에 평소 잘 보이지않던 경관들이 대거 배치돼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워싱턴에서 거물 정치인이 오느냐”고 물었더니 경관들은 “웨이크 포리스트 대학의 총장 때문”이라는 의외의 답을 했다. 미 동부지역 대학농구 4강전, UNC와 웨이크 포리스트대의 경기를 보러 오는 총장을 위해 이런 예우를 해주고 있었다.

이를 기억 나게 해준 것은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의 정운찬 서울대총장 사퇴 요구였다. 정 의원이 여러 얘기를 했지만, 한마디로 교육부의 ‘3불 정책’이 옳은데 정 총장이 말을 안 들으니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대학 총장을 물러나라고 하는 입장에서 경기를 보러 오는 총장에게 교통 통제까지 해주는 것은 어찌 보일까. 아마도 과공(過恭)으로 보일 것이다.

기자는 386 운동권 출신인 정 의원이 학원 운영으로 제법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의 인품과 식견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정운찬 총장에 대해선 조금 안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국은행 총재, 경제부총리 등의 자리를 제의 받았지만 고사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남을 음해까지 하는 세태에서 정 총장은 그나마 몇 명 남지않은 선비였다.

그런 정 총장을 한 초선 의원이 난도질할 만큼 3불 정책은 불변의 가치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본고사 시절보다 지금 과외가 훨씬 극성스럽고 공교육은 더 만신창이가 돼 있다. 그저 찬반론이 엇갈리는 수단일 뿐인 3불 정책을 지키기 위해 정 총장을 포기하자는 것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그렇다고 어찌 정 의원만 탓할 수 있으리요. ‘정상에 있는 자를 치면 밑져도 이익’이라는 희한한 셈법이 통하는 세상인데. 얼마 전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이 기간당원제에 부정적인 창당 주역들을 거의 ‘반역자’로 몰고 가는 일도 있었다. 기간당원제 역시 절대불변의 진리도 아니고 전당대회가 끝나자 10만 명 이상이 빠져나간 논란 많은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도 ‘기간당원제 아니면, 죽어라’는 식의 논리를 펼칠 수 있다니…그 용기가 경탄할만하다.

3불 정책이나 기간당원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은 다른 의견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요즘 정치판에는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심판자들이 너무 많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매일 보고 듣는 것은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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