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교수: 기업들 장기고용 기피비정규직 위주 신규고용벤처 등 창업기회 많아日보다 고용구조 유연메리 브린튼 교수: 日도 청년실업 크게 늘어평생 고용은 男정규직뿐정규·비정규직장벽허물고 활발한 교류 이뤄져야
‘평생 고용’을 바탕으로 높은 생산성을 자랑하던 한국과 일본은 1990년대 환란 이후 공통적으로 높은 청년실업, 정규-비정규직 양극화의 고통을 겪고 있다. 각각 한국과 일본의 실업문제를 연구해온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과 메리 브린튼 교수가 20일 본사 회의실에서 양국 고용환경의 실상과 원인, 해결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브린튼 교수는 최근 세미나 참석차 방한했다.
송 교수_최근 한국 실업률은 4%를 밑도는 등 나쁜 편은 아니지만, 청년 실업률은 10%에 육박한다. 또한 비정규직 비율은 노조계 주장에 따르면 50%에 달한다. 고용의 질이 전반적으로 악화하고,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이다.
브린튼 교수_일본도 비슷하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실업률은 낮았고 청년실업률은 더 낮았는데, 최근 10년간 청년실업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고졸자들의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의 경우 20년 전부터 학력차에 따라 임금격차가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일본에게는 최근의 현상이다. 일본은 장기불황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전통적 고용구조에 심각한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 일본이 자랑하던 ‘평생 고용’ 신화는 이제 중년 남성 정규직에게만 남아 있고, 그 비중마저 줄어들고 있다. 여성, 청년, 노년층은 대부분 비정규직화하고 있다.
송 교수_고용의 질 저하와 양극화는 세계적 현상이다. 브린튼 교수가 쓴 과거 논문에는 일본은 직업학교 등 학교와 직장을 연결해주는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100%에 가까운 취업률을 유지했다고 분석했는데, 왜 이런 네트워크가 무너졌나.
브린튼 교수_과거 일본기업들은 신규사원을 선발하면 기업고유의 교육을 통해 회사에 적합한 인력으로 양성해 장기 고용하는 패턴을 보여왔다. 그러나 장기불황 이후 대부분의 기업이 이런 식의 고용보장을 기피하고 있다.
송 교수_한국도 장기고용을 꺼리는 기업들이 늘고 있고, 정부도 기업에 정리해고 권한을 늘려주고 있다. 그 결과 대기업의 경우 기존 인력은 고용안정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반면 신규인력은 비정규직으로 충원하는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브린튼 교수_일본 정부는 기업에 정리해고 권한을 주는 것에 소극적이다. 하지만 정리해고 기피가 결국 젊은층의 실업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하면서 은퇴자들의 재취업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결국 중년 남성 노동자의 경우는 일본이 한국보다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으나, 청년, 여성, 노인층의 고용환경은 더 열악한 상황인 것 같다.
송 교수_한국의 경우 고용의 질 저하는 모든 계층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벤처기업 등 창업기회가 일본보다 더 많아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고용구조가 일본보다 빠르게 유연화할 수 있는 원인이 됐다.
브린튼 교수_일본 중년 남성의 경우 이직률이 극히 낮다. 이는 정부의 정책적 보호 이외에도 이직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측면도 있다. 평생고용을 전제로 특정회사에서만 통하는 직업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다른 회사로의 이직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중년 남성의 경우 창업을 희망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기성세대에게는 ‘오래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이 좋은 직장’이라는 관념이 여전히 뿌리 깊게 박혀 있는데, 사회 현실은 이와 다르다. 명문대 졸업자도 ‘좋은 직장’을 가질 기회가 거의 봉쇄된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전통적 직업관을 대체할 새 모델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송 교수_비정규직 문제로 넘어가자. 현재 한국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같은 작업장에서 똑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물론 의료비, 연금 등 각종 혜택에서 격차가 크다. 이런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정부는 정규직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고, 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브린튼 교수_일본 노조도 정규직 위주로 구성돼 있지만 한국보다 영향력이 약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일본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평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는 전연령에 걸쳐 이런 대립이 벌어지는 탓에 문제의 본질이 쉽게 드러나는 반면, 일본에서는 중년 남성은 정규직, 나머지 여성ㆍ청년ㆍ노년층은 비정규직으로 나눠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노동구조 차원이 아니라 불가피한 세대간의 문제로 생각한다.
송 교수_한국 사람들은 이 문제를 정부와 대기업이 책임져야 할 문제로 생각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 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젊은층은 인터넷에 익숙해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를 만들며 집단 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브린튼 교수_일본의 경우는 그 반대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걱정하기는 하지만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 반감을 갖지 않는다. 취업을 포기한 채 부모에 얹혀사는 ‘기생 싱글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것이 문화적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사람들은 사회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다. 또 한국은 외환위기가 단기ㆍ고강도 였다면, 일본은 점진적으로 장기간 진행돼 기존질서가 많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이런 차이를 불러왔다.
송 교수_한국은 청년실업 대책으로 기업의 인턴십 지원이나 공공분야 임시직 채용 등 일자리 만들기 차원의 대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브린튼 교수_일본의 경우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식의 대책은 없고, 지역노동사무소 등에서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일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옛 고용구조를 그대로 둔 채 미시적 조정에만 매달리고 있어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보다 일본이 더 걱정스럽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일본정부와 기업의 근본적 인식전환이 없는 한 ‘중년 남성 정규직’의 기득권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청년ㆍ여성의 고용의 질이 향상되기 힘들 것이다.
송 교수_한국 정부는 3년 이상 고용된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려고 한다. 이에 대해 노조는 부작용이 더 크며, 결국 모든 노동자가 비정규직화 할거라고 반대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정책은 없을까.
브린튼 교수_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제도적 장벽을 허물고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비정규직 문제만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직업 경험을 쌓지 못한 다수의 젊은층이 미래의 주축 노동력이 된다면 그 때 국가경쟁력이 어떻게 될 것인가. 다행히 최근 일본에서는 사설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파견직으로 취업해 일정기간 후 능력을 인정 받으면 그 회사의 정규직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고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고용형태를 보다 빠르게 보급하기 위해 파견직원이 정규직이 될 경우 인력공급업체와 해당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송 교수_한국에서는 외환위기 직후 인력공급업체가 많이 늘었으나 아직은 일용직이나 하위 단순직 공급에 그치고 있다. 일본식 모델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취업난에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하고픈 말은?
브린튼 교수_나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층에 대해 낙관적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전통적 직업관에 동의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평생 고용이 보장된다고 해도,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한다면 좋은 직장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직장에 얽매여 직장을 통해서만 정체성을 찾았던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벗어나 스스로를 찾으려는 시도들이 늘어가고 있다. 현재 젊은이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다양한 삶의 경로를 개척해 나갈 것이다. 이들의 시도가 성공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정리=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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