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별관. 23일 밤 11시 방송되는 KBS 2TV ‘폭소클럽’ 공개녹화에서 한 아마추어 개그맨이 아주 특별한 데뷔 무대를 가졌다.
주인공은 여섯 살 때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박대운(34)씨. 연세대 재학시절인 1998, 99년 2002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며 휠체어로 유럽 2,002㎞ 횡단, 한일 4,000㎞ 종단을 해냈던 그가 ‘바퀴 달린 사나이’란 고정 코너를 맡아, 이 땅 장애인들의 애환을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살짝 비틀어 전하며 뼈 있는 웃음을 선사하는 새 모험에 나섰다.
박씨의 개그맨 변신은, 가수 강원래씨를 통해 알고 지내던 개그맨 홍록기씨가 ‘블랑카’에 이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는 새 코너를 고심하던 제작진에게 그를 추천해 이뤄졌다. 그는 “평소 TV에서 장애인을 고난, 감동 따위 천편일률적 코드로 다루는 게 싫었다”면서 “장애를 소재로 웃음을 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고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장애인을 가깝게 느끼고 이해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무대에 서면 아무 것도 안보일 줄 알았는데 예쁜 여자, 못생긴 여자 다 구별되네요.” 녹화시작 전 첫 인사에서 만만찮은 입담으로 그보다 더 긴장해있는 관객들의 폭소를 이끌어낸 박씨는 공연 열기가 절정에 올랐을 무렵, 힘차게 휠체어를 밀며 무대에 올랐다.
“제 발이 좀 특이하게 생겼죠? 그래서 아이들이 절 보면 흠칫 놀랍니다. 그리고 꼭 한마디 하죠. 아저씨는 왜 다리가 없어?” ‘어우~’ 하는 한숨을 토해내던 관객들은 이어진 ‘반전’에 박장대소했다.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없는 게 아니라 숏다리란다.”
수영 수업 때 야한 수영복 입고 폼 잡다가 발버둥 아닌 ‘손버둥’을 쳤던 사연이며, “제가 좀 생긴 건 압니다만 너무들 쳐다보셔서 불편해요”라는 고백 등을 풀어놓은 박씨는 ‘다름’과 ‘틀림’에 대한 얘기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흔히 그 둘을 혼동해 쓰는 것처럼 장애를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걸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인정하는 사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가 오늘 작은 첫 발자국, 아니 첫 바퀴를 돌렸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에게 “웃겨야 할 대목에서 다 웃겼다” “어쩜 그렇게 하나도 떨지 않느냐”는 등 스태프와 출연진의 칭찬이 쏟아졌다. 특히 성우 김영민씨는 “제 동생도 4년 전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는데 자포자기 해 집에 틀어박혀 맨날 소주만 마셔대 가슴이 아프다”면서 “동생이 당당한 대운씨의 모습을 보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유럽횡단 후 팬으로 만나 어렵게 사랑을 키워온 최윤미(31)씨와 6월 화촉을 밝힌다. 또 경기 일산에서 운영하던 생과일주스 전문점이 망해 큰 손해를 본 뒤 닭갈비집 개업을 준비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개그라는 낯선 세계에의 도전이 큰 일을 앞둔 제 삶에도 활력소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초벌 대본 쓰고, 연습에 리허설, 공연까지 1주일에 2, 3일은 투자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정말 열심히 뛰어야겠죠?”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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